오르부아르Au Revoir La-Haut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 / 임호경
열린책들
페리쿠르 씨는 은행가로 커온 사람이었고, 재산의 반은 주식에서, 다른 반은 다른 기업체에서 나온 거였다. 그가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동료들 중에 혹하여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의 성공은 그의 수완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그는 선거 같은 불확실하고도, 때로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좌우되는 것을 싫어했다. 더구나 그에겐 정치적 기질이 없엇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강한 에고가 있어야 하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돈이었다. 그리고 돈은 어둠을 좋아했다. 페리쿠르 씨는 은밀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386
그것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지구는 늘 대재앙이나 역병으로 황폐화되기 일쑤고, 전쟁은 이 둘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를 탄환처럼 꿰뚫은 것은 죽은 이들의 나이였다. 대재앙은 만인을 죽이고, 역병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죽이지만,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은 오직 전쟁뿐인 것이다. 메를랭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이렇게 충격을 받게 될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실은 그 자신의 어느 부분이 프랑신을 만나던 시절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텅 비고 불균형적인 거대한 몸뚱이 속에는 죽은 이들과 나이가 같은 청년의 영혼의 한 조각이 아직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동료들보다 훨씬 덜 멍청한 그는 첫 군사 묘지에 방문했을 때부터 꼼꼼한 공무원답게 비정상적인 점들을 찾아냈다. 장부들에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들, 앞뒤가 안 맞는데 엉성하게 가려 놓은 것들이 너무도 많앗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공사가 얼마나 큰일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저 비에 흠뻑 젖은 불쌍한 세네갈인들을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이 믿을 수 없는 대량 학살극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이제 발굴하여 운반해야 할 시신들의 숫자를 한번 헤아려 본다면... 과연 이들에게 꼬치꼬치 따지고 까다롭게 굴 수 있겠는가? 그냥 눈을 감아 버리고, 잊어버리는 편이 좋으리라.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는 모종의 실용주의가 필요한 법, 메를랭은 여러 문제점들을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게 옳겠다고 판단했다. 이젠 끝내 버려야 해... 아, 이놈의 전쟁을 이젠 끝내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샤지에르말몽에서는 불안감이 가슴을 옥죄어 왔다. 두세 개의 단서를 겹쳐 봤을 때... 발굴된 관들 중에는 널판이 소각되지 않고 구덩이 속에 버려져 그대로 거기에 묻혀 버릴 듯한 것들이 보이고, 파헤친 무덤의 숫자와 발송된 관들의 숫자가 다르며, 또 어떤 날들에는 보고서가 대충 꾸며져 있고...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옳다, 혹은 그르다 하는 생각도 흔들렸다. 그러던 중에 입에다 프랑스 병사의 팔뼈 하나를 입에 물고 무용수처럼 팔짝팔짝 뛰고 있는 개 한 마리와 마주쳤을 때, 메를랭은 피가 거꾸로 솟고 말았다. 이제는 분명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그는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험상궂고도 격노한 얼굴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런 염병할, 그 개고생을 해서 전쟁을 이기고 났더니 이게 뭐냐고! 이제 나 좀 조용히 놔두면 안 되는 거야?
536
월 1,044프랑에, 연 1만 2천 프랑. 그는 평생 이걸로 목숨을 부지해 왔다. 완전히 빈털터리인 그는 익명으로 가난하게 죽을 거였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거였다. 어차피 그에게는 아무도 없엇다. 급여에 대한 질문은 직위에 대한 것보다도 훨씬 모욕적이었다. 직위는 부처 내에 한정된 문제인 반면, 궁핍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어디에나 따라다니면서 삶을 직조하고, 삶을 완전히 결정해 버린다. 그것은 매순간 당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당신이 무엇을 하든 더러운 액체처럼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궁핍은 오히려 극빈보다도 나쁜 것인데, 왜냐면 폐허 속에서도 위대함을 간직할 수 있는 반면, 부족함은 당신을 쩨쩨함과 치사함과 비열함과 인색함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을 비천하게 만드는 바, 왜냐면 그것 앞에서 온전한 상대톨 남아 있는 게, 자긍심과 존엄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볼티모어의 서Le Livre des Baltimore (0) | 2019.04.20 |
---|---|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Mr. Fox (0) | 2019.04.20 |
우리 몸이 세계라면 (0) | 2019.04.12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0) | 2019.04.08 |
거지 소녀The Begger Maid (0) | 2019.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