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The Noise of Time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 송은주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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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대부분은 이제 막 그의 집 주소를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그에게 제 구실도 못하는 귀를 잘라버리고, 그 김에 아예 머리까지 자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표현도 신문에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오늘 인민의 적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말은 절대 우연히, 또는 최고위층의 승인 없이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어째서 권력층이 이제 음악에, 그리고 그에게 주의를 돌리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권력층은 항상 음보다는 말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작곡가가 아니라 작가들이 인간 영혼의 기술자로 선포되었다. 작가들은 <프라우다> 1면에서 단죄를 당했고, 작곡가들은 3면에서 비난을 받았다. 두 면은 따로따로였다. 그러나 별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을 가를 수도 있었다.
인간 영혼의 기술자들: 냉랭하고 기계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인간 영혼이 아니라면, 예술가가 무엇으로 일을 하겠는가? 예술가가 단순히 장식이나 부자와 권력자들의 애완견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 자신부터가 감정, 정치, 예술의 원칙에서 항상 반귀족적이었다...
"인간 영혼의 기술자들." 두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감사하게도 자기의 영혼이 조작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대로 자기들의 영혼을 내버려둬주기를 바랐다. 이런 사람들은 이끌려고 하면 저항했다. 이 무료 노천 콘서트에 오시오. 동무, 아 정말로 꼭 참석해야 한다니까요. 그래요. 물론 자발적인 것이지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면 당신 실수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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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토프 동무가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말했잖소. 몸이 안 좋으면 의사를 보내주겠다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면 멀미를 합니다. 비행기를 탈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문제가 안되오. 의사가 약을 처방해줄 거요."
"친절에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겠소?"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한편으로는 한 마디만 말을 잘못해도 노동 수용소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도 놀랄 일이지만 두렵지 않았다.
"아뇨, 정말로 갈 수 없습니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래?"
"정장이 없습니다. 정장이 없으면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감이지만 살 여유도 없습니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지만,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중앙위원회 행정실에 만족할 만한 것으로 한 벌 마련해놓도록 이르겠소."
"감사합니다. 하지만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얘기해보시오."
그렇다. 스탈린이 모를 수도 있다.
"실은 제가 지금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저기 미국에서는 제 음악이 자주 연주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연주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물어볼 텐데요.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겠습니까?"
"당신 음악이 연주되지 않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연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작곡가 조합의 제 동료들 중 상당수의 음악도 그렇고요."
"금지되었다고? 누가 금지했단 말이오?"
"연주곡목 선정 국가 위원회에서요. 작년 2월 14일부터입니다. 연주할 수 없는 곡들의 긴 목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짐작하시겠지만 그 결과로 콘서트 매니저들이 제 다른 작품들도 다 프로그램에 넣지 않으려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악가들도 연주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셈입니다. 제 동료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단 말이오?"
"지도자 동무들 중 한 명이었겠지요."
"아니오." 권력층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명령을 한 적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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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 우리 존재의 음악 -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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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의 압박을 받다보면 자아는 금이 가고 쪼개진다. 남들 앞에서 겁쟁이는 마음 속으로는 영웅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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