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페란테 4

나폴리 4부작 |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Storia della bambino perduta

나폴리 4부작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Storia della bambina perduta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238 내가 묻자 릴라는 헐떡이면서 자동차의 경계가 해체되었다고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마르첼로도 경계가 해체되어 자동차와 마르첼로가 본래 틀과 몸에서 쏟아져 나와 그 금속성 액체와 살이 뒤섞여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 릴라는 분명 '경계의 해체'라는 표현을 썼다. 릴라가 그 표현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릴라는 힘겹게 그 말의 뜻을 설명했다. 릴라는 내가 '경계의 해체'가 무엇인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아주기를 바랐다. 릴라는 숨을 헐떡이면서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릴라는 사물과 사람의 경계는 섬세해서 무명실처럼 잘..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Storia di chi fugge e di chi resta

나폴리 4부작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Storia di chi fugge e di chi resta,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35 "리나는 용감해. 지나칠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도무지 현실과 타협할 줄을 몰라.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야. 자기 자신마저도 말이야. 그런 리나를 좋아하는 게 힘들었어." "무슨 뜻이야?" "리나는 헌신이 뭔지 몰라."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니야. 리나는 정말 문제가 있어. 생각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심지어는 성관계도 그랬어." 286 사실 미켈레는 릴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다른 여자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릴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켈레는 릴라의 몸에 올라타 마음 내키는..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Storia del nuovo cognome

나폴리 4부작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Storia del nuovo cognome,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21 돈도 남성의 육체도 학업조차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다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 나았다. 가슴속에 릴라의 분노가 느껴졌다.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통제력을 잃었고 그 상실감은 내게 오히려 기분 좋은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그 힘이 확장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내가 평소에 불행을 조용히 감내라는 이유는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낼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두려웠다. 그보다는 속으로 후회를 곱씹으면서 아무런..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나의 눈부신 친구L'amica geniale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L'amica geniale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137 "우린 아직 친구지?" "그럼."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릴라와 다시 가까워진 그날 아침, 나는 릴라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줬을 것이다. 집에서 도망칠 수도 있고, 동네를 떠나 농장에서 잘 수도 있고, 나무 뿌리로 연명할 수도 있었다. 수챗구멍을 지나 하수구로 내려갈 수도 있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지더라도 집에 되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내게 부탁한 건 별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순간에는 약간 실망했다. 릴라는 하루에 한 번씩, 한 시간이라도 괜찮으니 라틴어 책을 가지고 저녁 시간 전에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성가시게 굴지 않을게." 릴..

독서 20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