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

네다 2018. 12. 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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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

에이모 토울스Amor Towels / 서창렬

현대문학


52

이프성에 갇힌 에드몽 당테스의 경우, 그의 정신을 말짱하게 유지해준 것은 복수에 대한 생각이었다. 부당하게 갇혀 사는 동안 그는 자신에게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복수할 계획을 설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켜나갔다. 세르반테스는 해적들에게 잡혀 알제리에서 노예가 되었지만, 그에게 삶의 버팀목이자 자극제가 된 것은 아직 쓰이지 않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엘바섬에 유폐된 나폴레옹이 닭들 사이를 거닐고 파리 떼와 씨름하고 진흙 구덩이를 피해 걸을 때 그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힘을 불어넣어 준 것은 싸움에 이기고 파리로 돌아가는 환상이었다.

그러나 백작에게는 복수의 기질이 없었다. 장대한 작품을 구상할 상상력도 없었다.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꿈을 꿀 정도의 공상적인 자아도 없는 게 확실했다. 그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으로서 백작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인물은 전혀 다른 종류의 억류자일 터였다. 그것은 바로 해안으로 떠밀려온 영국 국교도였다. 배가 난파되어 '절망의 섬'에서 살게 된 로빈슨 크루소처럼 백작은 실질적인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유지해나가야 하리라.


80

러시아에서는 어떤 행위든 간에 배경이 장려하고 대의가 숭고하기만 하다면 지지자가 있을 것이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투 장소가 더 아름다워지고 권총이 더 멋있게 만들어지면서 잘난 남자들은 점점 더 사소하고 하찮은 모욕에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결쿠가 큰 죄 -배반, 반역, 간통 따위- 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다면, 1900년 무렵에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결투의 이유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모자를 삐딱하게 썼다고나 계속 째려보았다거나 쉼표의 위치가 틀렸다거나 하는 이유로도 결투가 벌어졌다...

새로운 시대에는 적어도 만 걸음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결투를 벌여야 하리라.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떨까. 누가 장갑을 내던져서 입회인을 지정하고 무기를 선택한다. 모욕한 사람은 미국행 배를 타야 하고, 모욕받은 사람은 일본행 배를 탄다. 각 나라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각자 가장 좋은 외투를 입고 각자의 건널 판자를 내려가서 부두에서 몸을 돌려 총을 쏠 수도 있으리라.


112

"맞아 바로 그것야."

"깔고, 다루고, 유지하기."

"가능케 하고 확실히 한다."

사방에서 열렬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젊은이의 제안은 대초원 지대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조합의 기관차처럼 빠르고 든든하게 채택을 향해 신속히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종착역이 가까워질 때 두 번째 줄의 홀쭉하게 야윈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사람이 조합에서 어떻게 대의원의 지위를 확보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마르고 가녀린 사람이었다. 사무원이거나 회계원일 것 같은 이 사람은, 조합의 사무직 근로자일 게 틀림없는 이 사람은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나자 '돕는다'는 단어만큼이나 미지근하고 틀에 박힌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시적 간결함은 한 단어로 충분할 때 둘로 나누어 쓰는 것을 피할 것을 요구합니다."

"저건 뭔 소리야?"

"뭐라고 한거야?"

몇몇 사람이 그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낼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손이 그 사람의 몸에 닿기 전에 다섯 번째 줄의 건장한 사내가 일어서지 않고 앉은 채로 말했다.

"시적 간결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의 수컷들은 그 혼자로도 충분했을 텐데도 짝을 부여받았잖아요."

우레와 같은 박수!

'돕는다'를 '가능케 하고 확실히 한다'로 대체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은 만장일치의 박수와 대다수가 발을 구르는 소리로 채택되었다. 발코니에 있는 동안 백작은 정치적 담론이 언제나 따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139

"고고학자로서 톰센이 인류의 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했을 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각 시대를 규정하는 물리적 도구에 따라서 그렇게 했어. 그런데 인간의 영적 발달은 어떻지? 인간의 도전적 발달은 어떻지? 그것들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아간 거야. 석기시대에 동굴에서 사는 사람들의 머리에 든 생각은 그들의 손에 들린 몽둥이만큼이나 무뎠고, 불꽃을 일으킬 때 쓰는 부싯돌만큼이나 거칠었지. 청동기시대에 영리한 몇몇 사람이 야금술을 개발했을 대, 그들이 동전과 왕관과 검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일반 사람들은 이후 천년 동안 그 사악한 삼위일체의 노예가 되었지."

미시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철기시대가 도래했어. 철기시대와 함께 증기 엔진, 인쇄기, 총이 만들어졌지. 이것들은 아주 다른 삼위일체야. 이 도구들은 부르주아 자신의 이익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부르주아에 의해 발달했지만, 바로 그 엔진, 인쇄, 총을 통해서 프로레타리아가 노동, 무지, 학정에서 해방되기 시작했지."


141

사실, 자신의 시대와 심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고유한 문화로 유명한 도시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 도시의 권위를 드높이는 습관, 양식, 사상 등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줄곧 시대의 경향도, 또래들의 열망도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곤 한다.

그러한 사람은 로맨스나 직업적 성공의 기회는 잊어버려야 한다. 로맨스나 직업적 성공은 시대에 발맞추어 사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이 그것 대신 택할 수 있는 것은 노새처럼 시끄럽게 울어대거나, 또는 못 보고 지나친 서점에서 발견한 못 보고 넘어간 책에서 가능한 한 많은 위안을 찾는 것이리라. 그러다가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새벽 2시에 비틀거리며 방에 돌아와서, 그 도시의 살롱에서 있었던 최신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리둥절한 상태로 말없이 듣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것이 살아오는 동안 대부분의 시기에 겪었던 미시카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딱 알맞을 때와 딱 알맞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너무 생경해 보이던 양식과 태도가 갑자기 깡그리 무시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의 정서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양식과 탠도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을 낯선 바다에 표류하던 고독한 뱃사람이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하늘을 보니 그곳에 익숙한 별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이런 일 -이처럼 별들이 특별히 재배치되는 일- 이 일어날 때 자신의 시대와 너무 오랫동안 어울리지 못했던 그 사람은 상황이 지극히 명료해지는 것은 경험한다. 갑자기 지나간 모든 것들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게 뚜렷이 보이고, 앞으로 펼쳐질 모든 전망이 더없이 명확한 운율과 이유를 띠게 된다.


275

8시30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그는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시트를 젖히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다음 다리가 세 개인 농에서 커피 원두가 든 양철통을 꺼내,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한 스푼 넣고서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조그마한 손잡이를 계속 돌리는 동안에도 방은 여전히 미약하나마 수면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아직은 기세가 살아 있는 졸음이 시각과 감각, 형상과 형식, 얘기된 것들과 해야할 것들에 계속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각각의 요소에 제 나름의 비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이 그라인더의 작은 목제 서랍을 열자, 세상과 세상 속 만물이 연금술사들이 선망했던 바 -갓 간 원두의 향- 대로 바뀌었다.

바로 그 순간, 어둠과 빛이 나뉘고, 바다와 땅이 나뉘고, 하늘과 지상이 나뉘었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었고, 숲은 새들과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갖가지 벌레들의 움직임으로 부산스러웠다. 가까운 곳에서는 인내심 많은 비둘기가 지붕과 벽 사이의 빗물막이 동판에서 발을 끌며 걷고 있었다.


316


어떤 사람이 친구로부터 과소평가받아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분이 상할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친구란 모름지기 서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의 도덕적 강인함에 대해, 미적 감각에 대해, 지적 시야에 대해 과장된 견해를 가져야 한다. 친구라면 우리가 한 손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결정적인 순간에 창문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실제로 상상해야 한다!


387

백작의 아버지는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 시계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백작의 아버니는 스토아학파와 몽테뉴의 신봉자였으며, 우리의 창조주는 오전 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았다고 믿었다. 즉, 6시 이전에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하고,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일에 몰두한다면 정오 무렵까지는 하루치의 노동을 완수하게 된다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의 시각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심판의 순간이었다. 정오의 종이 울리면 근면한 인간은 오전을 알차게 보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는 양심이 깨끗해진 상태에서 점심 식탁에 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정오의 종이 울릴 때 어리석은 인간 -침대에서 뭉그적거리거나, 조간신문을 세 개나 읽으며 아침을 먹거나, 응접실에서 무의미한 잡담을 하며 오전 시간을 낭비한 사람- 은 신의 용서를 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시계 종소리는?

그 소리는 절대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하루를 충실히 잘 살았다면 -근면과 자유의 신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았다면- 그 사람은 12시 자정이 훨씬 전에 곤히 잠들어 있어야 했다. 따라서 하루에 두 번만 울리는 시계의 두 번째 종소리는 명백히 하나의 충고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뭐하는 거야?' '낮 시간을 지나치게 낭비한 탓에 어둠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아 헤매야만 하는 것 아닌가?' 종소리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408

처음 몇 년을 프랑스어와 프랑스인 공부(숙어 및 연설의 유형, 나폴레옹과 리슐리외와 탈레랑의 성격, 계몽의 본질, 인상파의 천재성,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은 것'(je ne sais quai)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느 프랑스인들의 전반적 성향 등)에 할애한 백작과 오시프는, 다음 몇 년간은 영국인(차를 꼭 마셔야 하는 이유, 믿기 어려운 크리켓 규칙, 여우 사냥의 에티켓,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거침없는 그들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부심, 모든 것을 포용하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술집 문화 등)을 공부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들의 관심사는 미국으로 넘어갔다.

오늘 밤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 위, 거의 비워진 접시들 옆에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걸작 '미국의 민주주의' 두 권이 놓여 있었다.


436

"그래, 모스크바를 불태운 것이야말로 지극히 러시아적인 행위였다, 친구.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건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건 사건의 한 형식이었어. 수천 개의 역사에서 따온 하나의 사례일 뿐이야.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창조한 것을 파괴하는 데 기가 막히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는 걸 증명해왔다네."


457

"사샤, 어떤 나라든 나름의 대형 캔버스를 보유하고 있지. 이른바 신성한 복도에 걸린, 후대를 이해 국가의 정체성을 요약한 걸작 말이야. 프랑스인들에게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그렇고,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렘프란트의 '야경꾼'이, 미국인들에게는 '델라웨어를 가로지르는 워싱턴'이 거기에 해당되지. 그렇다면 우리 러시아인들에게는? 우리에겐 쌍둥이가 있지. 니콜라이 게의 '알렉세이 황태자를 신문하는 표토르 대제'와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라네. 수십 년 동안 이 두 그림은 우리 국민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고,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으며, 미술 학교의 부지런한 학생들은 열심히 이 그림들을 스케치했지. 그런데 이 그림들은 무얼 묘사하고 있을까? 한 그림에서 우리의 가장 개화된 차르는 금방이라도 사형을 선고할 것처럼 장남을 의심의 눈초리로 뜯어 보고 있어. 다른 그림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던 이반 뇌제가 자신의 장남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지. 하지만 이미 홀을 아들의 머리에 휘두름으로써 최고 권력을 행사한 후였다네.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밝은 색상의 첨탑과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둥근 지붕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우리의 교회들을 우리는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어. 우리는 옛 영웅들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있고, 거리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떼어내고 있지. 마치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우리는 시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아니면 시인들 스스로 침묵하기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어."


488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수많은 걱정거리 -학업, 옷, 예절 등- 가 뒤따르지만, 결국 부모의 책임이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키움으로써 아이가 목적 있는 삶을, 그리고 신이 허락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501

그는 샬라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야르스키에서 식사해 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는 간접적인 삶이 배당되어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삶이 할당된 것이었다. 귀가 따가운 트럼펫 소리도,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도, 젋은 여성의 드러난 무릎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마치 과학자의 조수처럼 그저 데이터를 기록하고 아무것도 꾸미거나 덧붙이지 않은 상태로 요약본을 상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사실 그는 이런 일에 아주 유능했으며, 그가 속한 부서에서는 일종의 천재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모스크바 전역에 걸쳐 그토록 완벽하게 무미건조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간결했다. 그는 자신의 직관을 억제하고 재담을 삼가며 은유, 직유, 유추의 사용을 제한하는, 한마디로 시적 절제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기술을 완벽히 구사했다. 만약 그가 충실히 받아 적고 나서 작성한 보고서를 해당 기자들이 보았다면, 그 기자들은 모자를 벗고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가 바로 '객관성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것이다.


502

실제로 위기에 대한 인식을 억누르려는 당국의 활동이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을 대에도 러시아 주재 '뉴욕타임스'의 수석 특파원인 월터 듀런티(샬라핀에 출입하는 고참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기근에 대한 이런 소문이 심하게 과장되었으며, 아마도 반 소비에트 선동주의자들이 그런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따라서 세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런 범죄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듀런티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