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싸개
황사영은 처숙부가 말하는 신이란 강물과 같아서 현재를 모두 거느리고 흘러서 미래의 시간으로 생성되는 지속성으로 여겼다. 그때 황사영은 글이나 말을 통하지 않고 사물을 자신의 마음으로 직접 이해했고, 몸으로 받았다. 임금과 조정이 스스로를 세계의 원리로 내세우며 스스로 자기 근원이며 질서의 원천으로 군림하면서 현실을 넘어서는 주재자의 신성을 부정할때, 인간 세상은 한갓 남루한 왕조일 뿐이며, 창검으로 무장하고 가두고 때리면서 빼앗고 빼앗기는 해골의 골짜기다, 그리고 이 무지몽매가 지상에 창궐하는 모든 악의 원천이라는 것, 이 또한 삼 더하기 사 처럼 자명하다, 아 사람들아, 눈을 뜨고 자명한 것의 자명함을 보라.....말하는 정약용은 목소리를 낮추었고 듣는 황사영은 두려움에 떨었다.
고등어
흑산 수군진은 굼금으로 소나무 벌재를 단속했고 소나무를 살릴 책임을 섬사람들에게 떠넘겼다. 공산에 저절로 생겨난 소나무거나 개인 집 마당에 심은 소나무거나,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했다. 공산의 소나무는 그루 수를 헤아리고 번호를 매겨서 나무에게 가까운 민가에 관리 책임을 지웠다. 소나무가 벌레 먹거나 병들어 죽거나 태풍에 쓰러져서 죽으면 나뭇값을 받아냈다. 섬사람들은 초상이 나도 관을 짤 수 없어서 초장을 지내고 서까래가 썩어도 잡목으로 이어 붙였다. 집에 나무기둥을 쓸 수가 없어서 돌과 흙만으로 제비집처럼 짓기도 했다...바람이 불어서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 장팔수는 집 근처의 야산을 돌면서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는 어린 소나무를 뽑아버렸다. 소나무가 자라면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장팔수뿐 아니라, 다른 어부륻로 뱃일이 없는 날에는 어린 소나무를 뿌리째 캐내서 아궁이에 던졌다. 사람들은 그 일을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다들 알고 있었다.
흑산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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