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시아정교회에서 출교당한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으로서, 사랑으로서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되는 신을 믿는다. 나는 신이 내 속에 있으며, 내가 또 신 속에 있음을 믿는다. 나는 신의 의지가 인간 예수의 가르침 속에 알기 쉽게 명백히 표현되어 있다고 믿는 것일뿐, 예수를 신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기도드리는 것을 가장 큰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게는 톨스토이의 사상에서 받은 감화를 그 특유의 개성적인 시각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 대표작이 <무엇이 진리인가?>와 <갈보리>다.
<무엇이 진리인가?>는 대위법적인 화면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로마의 유대인 총독 빌라도와 예수, 전자는 등을 보이고 있고 후자는 앞을 바라보고 있따. 한 사람은 빛을 받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림자에 싸여있다. 빌라도는 자유로운 권력자의 제스처를 하고 있는 반면 예수는 손이 뒤로 결박된 상태다. 빌라도의 몸집은 다소 뚱뚱한 편이나 예수는 바짝 말랐다. 두 사람의 이런 대조는 화면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만들뿐 아니라 관객이 예수가 처한 상황 속으로 급격히 빨려들게 한다.
2.
레핀은 1844년 8월 5일(구력 7월 24일)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추구예프에서 병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인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로 러시아 화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비평가 스타소프가 "이 작품은 오늘날 러시아에서 제작한 어떤 작품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그의 이력에서 중요한 출세작이 되었다.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급부상한 레핀을 1873년 미술아카데미에서 여행 경비를 지원받아 이탈리아를 거쳐 파리에 가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인상파 등 새로운 조류를 접했지만 흥미를 보이는 데 그칠뿐, 주제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에 인상파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다. 하지만 1876년 러시아로 돌아온뒤 그의 그림에 나타난 외광파적이 자연주의 형식은 마네의 영향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이 밝고 사실적인 형식은 특히 초상화에서 빛을 발했는데, 톨스토이, 무소르그스키 등의 인상적인 초상화가 이 형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초상화가로 명성을 날린 레핀은 무엇보다 나름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에 기초한 도덕 주제를 표현하는데 제일 관심이 많았다. 역사화가로서의 소명의식이 더 컸던 것이다. <쿠르스크 구배르니아의 종교 행렬>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등의 작품이 그런 관심의 소산이다. 혁명세력인 나로드니키의 영향으로 결성된 이동파에 그가 참여한 것도 이와 같은 지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이동파 참여에 미술아카데미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사실 그의 역사화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사회악에 대한 항의의 정신이 담겨 있다.
3.
톨스토이와 함께 당대 러시아 문단을 지배한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달리 크람스코이와 같은 잡계급 출신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 재산과 저작권을 버리려 했으나 부인의 반대로 끝까지 유복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톨스토이와, 빈곤과 유형 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느라 소설 쓰는 것 자체가 당장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곤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출신과 삶의 궤적만큼이나 다른 인생과 분위기를 띨 수밖에 없었다.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에 그 차이가 잘 나타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의식 분석과 심리 묘사에서 탁월한 작가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폭압적인 성격으로 농노에게 살해된 아버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른 죽음, 공상적 사회주의 연구 모임인 '페트라스셰프스키 클럽'에 가입했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극적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경험, 유형지에서 생긴 간질, 도박으로 인해 늘 빚에 쪼들리던 생활 등 그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 있는 아픈 경험이 많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은 소설가 가운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가장 뛰어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이 대문호 역시 그의 주인공들 못지않게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임을 생생히 드러내 보이는 역작이다.
4.
'숙명'이나 '운명'이라는 말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에 붙일 수식어로는 너무 어색하다. 행복하게 살도록 운명지어진 인생, 혹은 숙명적인 평화와 행복. 이 얼마나 어색한 표현인가. 그런점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못하고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에게조차 버림받은 악마야말로 가장 숙명적인 존재가 아닌가 싶다. 세기말 데카당스의 비애미가 브루벨의 악마를 통해 분출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악과 소외, 숙명적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위선적인 기득권자들과 기성 사회에 대해 격렬하게 거부의 몸짓을 보이는 한 순수한 예술혼을 목도하게 된다.
5.
"그림은 전쟁터의 말이나 여인 누드, 하나의 일화이기 이전에 의도된 질서에 따라 색이 칠해진 평평한 표면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르누보 미술의 선구자 드니가 한 말이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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