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교는 어떤 종류의 어리석음과 피를 섞고 있지만, 현명함과는 그다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어린이와 노인, 여자 그리고 백치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의식이나 행사를 좋아하며, 특히 종교적 냄새가 짙은 일을 즐거워하고 충동에 이끌려 제단 주변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종교의 기초를 쌓아올린 사람은 매우 단순한 사람이며, 학예에 적대적이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인간의 어떤 어리석음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열에 빠져 있는 자의 어리석음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내던지는 것은 물론, 매도되거나 중상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쉽사리 사기에 넘어가며, 적과 내편의 구별도 못한 채 쾌락을 증오하고, 단식 불면 눈물 고통 굴욕을 십분 맛보며 살아 있는 삶을 싫어한 채 오로지 죽음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세속적 감정을 버리고 마치 정신이 자신의 육체 밖에서 따로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이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곧, 그리스도교도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일종의 어리석음과 광기에 속한 것이 아닌가.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의<우신예찬>"
<교양으로 읽어야할 절대지식> 중에서
2.
"첫 번째는 사물의 운동으로 증명된다... 어느 것에 의해서도 움직여지지 않는 제 1의 움직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제 1의 움직이는 것이 신이다.
두 번째는 작용인의 근거에 기초한 증명이다...따라서 제1의 작용인, 곧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3의 증명은 가능한 것과 필연적인 것을 근거로 한다...그것은 다른 것에 의해 필연성의 원인이 되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필연적인 것이 신이다.
제4의 증명은 모든 사물을 통해 발견되는 완전성의 단계에서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최대한으로 선하고, 참되고, 고귀한 것이 존재하며, 그 것이 바로 그 같은 종류에 속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이 원인이 신이다.
제5의 증명은 모든 사물이 가진 목적에 의해 행해진다... 이렇게 하여 모든 자연물이 목적에 의한 질서를 갖추게 되는 어떤 지성 인식자가 존재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교양으로 읽어야할 절대지식> 중에서
3.
세상이 창조되었는가 생물이 진화되었는가 따위의 문제에는 관심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치열한 전투의 장이고,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죽는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고 우리의 문제는 코앞에 있다. 어디선가 무슨 망할 놈의 과학자가 '반물질'같은 연료를 무기로 사용하려다가 세상이 파괴된다면, 그대로 끝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보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고, 그 선택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교 논술 대비랍시고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정신을 초월하여 발달하는 과학기술에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철학이 그 브레이크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보다. 우리는 쓸데 없이 알고싶어하는 것이 많은 인간이다. 그냥 놔두면 저 혼자 알아서 알고 싶은 데까지 알아낼 것이다. 아니, 알고 싶은 '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놔두면 죽을 때까지 계속 연구만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는 빌어먹을 호기심으로 가득찬 존재들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한다. "인간이 계속 호기심을 충족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왜 안되냐고 물어보면, 약간 수줍게 분홍빛으로 상기된 표정으로 "그건... 신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귀신 옆구리에 씨나락 붙어서 지나가던 개가 이를 보고 자다가 홍두깨로 죽도록 맞고 또 맞는 소리를 한다. 과학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어딘데, 그런 과학에 바리케이드를 치자고 한다. 과학자들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인구의 절반은 호환마마에 걸려 곰보딱지 붙은 얼굴을 하고있을 것이고, 태아 사망률은 전체 사망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여 여성들은 죽을 때까지 애만 낳는 기계가 되어야 하고, 달은 커녕 옆동네 가는데도 하루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에 발을 걸자고?
'신은 없다'
난 벌받아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죽으니까 그리 억울하지는 않다. 그리고 진짜로 병이라도 걸리면 병원가면 되니까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신이 없다고 말하겠다. 우리는 신이 없이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짜로 사람들이 신을 안 믿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마르크스가 말한대로 종교는 정말로 마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다. 몽롱 망각 무절제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종교에 미친 사람들한테도 자주 볼 수 있다. 종교에도 중독될 수 있고 종교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진짜로 노예로 만들었었다. 중세시대에 영주들은 돈독이 올라 없는 땅까지 파 금을 모으고 있을 때, 일반 백성들은 내세의 삶을 굳게 믿는다고 죽도록 일만하다가 신변에 비관이 생기고 짜증나고 심심하면 마녀들이랍시고 미녀들이나 천재소녀들을 태우러 다녔다. 신의 뜻이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라는 것이었나?!
그런데, 신이 원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신을 만들 수는 있겠다. 누군가 아파하는데 그걸 모른 체하면, 그건 신한테 벌받을 놈이다. 누군가 죽어가는데 그걸 모른 체 하면, 그건 신한테 죽어 마땅한 놈이다.
신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느낌이 온다. 복잡다단한 현대 과학의 시대에서 정의와 부정을 가르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도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나보다 똑똑한 과학자 나리들은 나보다 더 잘 아니까 어디선가 멈춰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어디선가를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난 천주교를 다녔'었'다. 이제는 더 이상 다니지도 않고, 다닌다고 굳이 우기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난 내 세례명을 좋아하고, 옛날에 배운 식사 전 성호 긋기도 좋아하고, 찬송가 '생명의 양식'도 매우 좋아한다. 난 내 세례명이 나를 어떤 기로에서 결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고,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즐거운 노래는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번 해에 은하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도 흥미가 있고, 인간 배아 줄기 세포가 어떻게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도 꽤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었다고 말하는데 동의하고 -비록 궁무처장은 그게 과연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역설하지만- 앞으로도 과학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복제양 돌리 -故돌리는 조로병으로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다- 의 이미지에 에일리언에서 시고니 위버가 자기의 비정상적인 복제체들을 분노의 눈으로 울면서 태울때의 이미지가 겹쳐진다면 그것은 잠시 멈춰봐야 할 때이다.
어떤 사람이 종교를 가졌느냐? 하는 질문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신념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신념은 믿음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각 이성 냉철한 판단 결정력 추진력 곧은 자세... 신도 이런 것들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짜로 도움을 주는 것이 신인가 하고 깊게 질문한다면... 신의 끝으로 파고 들어갈수록 희미하게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사와 악마
댄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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