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클래식클라우드 셰익스피어,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네다 2018. 8. 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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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 셰익스피어,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황광수

아르테arte


144

덜컹,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을 내다보자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간 철길들이 눈에 들어왔따. 그것들은 어느 나라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손짓하고 있었지만, 나는 정해진 곳으로 가야 했다. 그래도 나는 기차 여행이 좋았다. 무엇보다 스쳐가는 풍경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기차 바퀴의 진동도 좋았다. 때로는 한순간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기차의 속성조차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틀에 감겼다가 풀리는 필름처럼 제한된 풍경들만 펼쳐 보이지만, 순간순간의 만남에 어떤 숙명적이 기분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궁전 건물들에 둘러싸인 넓은 안마당에는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아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궁전 안의 거실엔느 날씬하고 갸름한 얼굴의 햄릿이 한쪽 손에 하얀 장갑을 든 채 서 있었다. 어떤 방의 벽에는 깃털 펜을 쥔 셰익스피어의 상반신을 부조한 석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 궁전은 지하 감옥까지 개방했다. 나는 앞사람의 꽁무니를 따라 지하의 어둠 속을 헤맸다. 칠흑 같은 지하의 어둠은 지상의 화려함과 대칭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지하의 신음 소리가 음산할수록 지상의 웃음소린느 밝고 명랑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햇살이 동공 속으로 아프게 파고 들었다.


155

왕의 명령을 받고 햄릿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나타난 친구들에게 햄릿이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다. 로렌크란츠는 "대치의 무심한 아이들처럼" 지냈다고 간단히 대답하지만, 길텐스턴은 좀 복잡하게 대답한다. "과도한 행복이 아니어서 다행이지요./ 우리는 행운의 여신 모자 꼭대기 단추 위에 있는건 아닙니다."(2.2.225-227) 그러자, 햄릿이 묻는다. "신발 밑창에 있는 것도 아니겠지?" 로렌크란츠가 그렇다고 하자, 햄릿이 다시 묻는다. "그럼 그녀의 허리 근처, 아니면 그녀의 호의favours 한가운데?" '호의'로 번역한 'favours'는 여성의 성적인 친밀감을 의미한다. 그러자 길덴스턴이 대답한다. "실은, 우리는 그녀의 평범한 신민privates이지요." '신민'으로 번역한 'privates'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관직이 없는 '평범한 백성'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음부'이다. 햄릿이 이것을 놓칠리 없다. "그녀의 은밀한 곳? 아 정말 그럴듯해. 그녀는 창녀니까."(2.2.232-233) 이 문장에는 모든 남성들의 청원을 들어준다는 점에서 행운의 여신은 뭇 남성들을 품어주는 창녀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58

햄릿은 혼자 있을 때는 사색적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신랄하고, 장난스럽고, 때로는 교묘하게 성적인 농담을 즐긴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어에서 'thing'은 남성의 성기, 'nothing'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 시대 사람들을 여성을 두 다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햄릿이 오펠리아에게 'no-thing'이란 낱말로 성적 암시를 드러낼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이 낱말이 나오게 된 정황은 이렇다. 햄릿이 극을 보러 가서 오필리아 곁에 앉으며 네 무릎에 누워도 되느냐고 묻는다. 오필리아가 안된다고 하자 햄릿이 '성교country matters'를 생각했느냐고 묻는다. 오필리아가 "아무 생각도 안했다I think nothing."고 대답하자 햄릿이 더 짓궂게 오필리아를 건드린다. "처녀의 다리 사이에 눕는 건 즐거운 일이지."(3.2.254) 그러자 오필리아는 "뭐가요?" 하고 묻고 햄릿이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니야.No-thing." 'no'와 'thing' 사이에 하이픈을 넣은 것은 옥스퍼드 판의 편집자이지만, 그렇게 하면 여성의 성기는 '물건 아닌 것'이 되어 좀 더 복잡한 함의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