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 이지수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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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샐러드는 내 수필집에도 실려 있어서 부끄럽지만, 나의 요리 중에서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으므로 써둔다. 파리에서 살 때 살라다 뤼스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러시아요리처럼 보이지만 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빌헬름 2세가 전투식량으로 직접 만들어 병사들을 먹였다는 음식으로 독일의 요리 잡지에도 실려 있다. 빌헬름 2세가 러시아요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흰살 생선을 식초와 물로 삶는데, 봄이라면 도미겠지만 가을에는 고등어가 좋다. 식초는 물의 3분의 1 비율로 넣고 뼈가 있다면 발라낸다. 내게 생선살을 발라내거나 삶은 밤 껍질을 까는 건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이므로 언제나 생선 도막을 삶아서 껍질과 거무스름한 부분만 떼어내는데, 그것마저 싫을때는 횟감용 도막 하나를 산다. 감자와 당근은 주사위 모양을 썰어서 삶는데 이때 소금은 안 넣고, 양파는 잘게 썬다. 양파는 물에 헹구지 않는데 그 편이 더 독일답고 야성적이며, 독일의 초원에서 빵에라도 끼워서 덥석 베어 무는 데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좋아하던 옛날 일고생이나 그 야생미를 그대로 간직한 어른 남자 같기 때문이다. 달걀을 단단히 삶아서 흰자와 노른자를 모두 굵게 다지고, 강낭콩을 꼬투리째 짧게 썰어서 삶는다. 이때 색이 바래지 않도록 소금을 한 자밤 넣는다. 그 외에는 파슬리를 가루처럼 잘게 다진다. 생선과 채소, 파슬리를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식초에 물을 조금 탄 것으로 버무리면 달걀노른자는 반쯤 풀어져 섞여서 색 배합이 훨씬 예쁜다.
어떤 사람들은 흰살 생선이라도 일단 생선을 넣는다고 하면 비릴 거라는 생각에 햄이라도 넣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식초 탄 물로 삶는 데다 백문이 불여일견, 먹어보면 맛있다. 누구나 맛있다고 한다. 아들은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볼에 만들어줘도 순식간에 전부 비운다. 넙치를 넣었을 때는 조금 물컹하다 싶었지만 닭고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담백하다. 이 요리는 맥주랑 어울려서 흑빵이나 껍질이 단단한 바게트를 따로 굽지 않고 그대로 버터를 곁들여 맥주와 함께 먹는다. 독일의 혈색 좋고 활기찬 청년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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