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거지 소녀The Begger Maid

네다 2019. 4. 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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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The Begger Maid

앨리스 먼로Alise Munro / 민은영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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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서 자랐어." 언젠가 다른 상황에서 그녀는 말했다. 그런 말을 하다보니 자신이 연극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가난해. 자기는 내가 살던 곳을 보면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할 거야."

상대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는 척하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그녀였다. 당연히 그가 오, 그래 네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돼지우리에 산다면 네게 했던 제안을 철회해야겠어, 하고 말하리라고 예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좋아." 패트릭이 말했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누구?"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

패트릭은 술수를 부릴 때가 있었다. - 아니, 그건 술수가 아니었다. 패트릭은 술수를 부릴 줄 몰랐다. 패트릭은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때 그 나름의 방식으로 놀라움을, 조롱 섞인 놀라움을 표현하곤 했다. 또한 자기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굳이 알고 있을 때에도 비슷한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의 오만과 겸손은 양쪽 다 기묘하게 과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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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는 그 그림을 보았다. 도서관에 있는 미술서적을 찾아본 것이다. 그녀는 유순하고 육감적인 거지 소녀와 그 소녀의 수줍은 흰 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 패트릭은 로즈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걸까? 그녀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까? 그녀에게는 그런 왕이 필요할 것이다. 그 왕처럼 날카롭고 가무잡잡하며, 열정의 무아지경에 빠져서도 총명하고 야만적인 사람. 그는 자신의 적절한 욕망으로 그녀를 완전히 녹아내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사과란 없을 것이다, 패트릭과의 모든 의사소통에서 드러나는 듯한 주춤거림이나 신념 부족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패트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돈의 양이 아니라 그가 주는 사랑의 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안쓰러움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믿었다. 마치 그가 군중 속에서 커다랗고 단순하고 빛나는 물체 - 가령 순은으로 된 거대한 달걀 같은, 용도는 미심쩍지만 살인적으로 무거운 물체 - 를 들고 다가와 자신에게 바치는 듯, 아니 실은 마구 떠안기며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자고 애원하는 듯했다. 그걸 그에게 도로 떠안긴다면 그는 어떻게 견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설명에는 뭔가 빠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로즈 자신의 욕구, 재산이 아니라 흠모를 바라는 욕구였다. 그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리고 그녀 역시 의심하지 않는) 그것의 크기, 무게, 광채는 그녀를 감명시켜야만 했다. 비록 그녀가 요구한 것은 아니엇지만. 그런 선물이 또다시 그녀에게 올 것 같지도 않았다. 패트릭 자신도 로즈를 흠모하면서도 은근히 에둘러 그녀의 행운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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