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하완
웅진지식하우스
얼마전까지 유행하던 자기계발서의 뒤를 이어 무소유, YOLO 등 마음의 짐을 비우는 도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위 자기위로서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동안 의지와 노력을 통해 삶을 개선하려던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노오오력에 회의를 품고, 금수저흙수저 이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홀로의 삶을 즐기는 방향으로 의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 사람들이 너무나 개인주의적이라서 이기적이고 정이 없다고 혹평해 왔는데 사실 개인주의 문화의 이면에는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무기력감이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백년간 이어져 온 귀족 중심의 계급제도, 수십년간 벌어져 온 극부층과 극빈층의 격차, 보통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백만장자들의 삶. 이러한 서글픈 현실이 '내 인생에 집중하자'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승화된 것이다. 이제 한국도 계급상승의 사다리가 삭아가고 있고,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고치로 자신을 더욱 단단히 둘러싸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자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고정적으로 출퇴근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생계 걱정없이 생활을 유지하고, 그 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표를 쓰고 여유부릴 수 있었던 근간에는 남들에게 소개하기 좋은 멋진 대학, 정규직으로 알차게 다니던 회사라는 직장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번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바람에 아마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아 이제는 더이상 직장에 대한 미련도 없어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있는 자가 없는 자의 이미지로 치장하고서는, 없어보니 좋더라! 하고 한가로운 소리를 내뱉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금수저들이 흙수저의 '없는대로 대충 살아가는 이미지'까지 탐낸다는 누군가의 뼈아픈 지적처럼 말이다.
책의 내용은 다른 위로서들과 대동소이하다. 현재를 즐겨라,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해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그때는 큰일 난 줄 알았는데 지나고보니 별일 아니더라, 혼자서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등등이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암, 그렇지 그렇지, 나도 이렇게 살면 좋겠다, 하고 품평하다보면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그 넘겨보낸 책장 중에 실제로 내가 내 인생에서 써먹을 수 있는 장이 얼마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나면 일주일의 행복한 여행을 다녀온 듯 싶고, 한편의 멋진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나의 몫이다. 아무리 자기위로서를 읽어봤자 글쓴이들은 이미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행복한 또다른 SNS 주인공들이다. 내 인생에의 위로는 내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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