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람의 아들

네다 2020. 9. 1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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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이문열

250

"원래 야훼는 엘 사타이 산에 은거하던 목양자의 신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 모세의 광기가 접한 호렙 산의 영이 더해져 야훼는 곧 가나안 쟁취를 위한 무자비한 군신으로 변질되었다. 그 뒤 엘리야와 호세아는 야훼에게 농경신의 권능을 더하였고, 아모스와 이사야를 통해 민족의 신에서 우주의 절대유일자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바빌로니아인들의 창조론과 우주론을 표절하는 한편, 페르샤인들의 사탄과 종말론을 도입함으로써 우리의 야훼는 완성되었다. 결국 야훼가 우리를 만든것이 아니라 우리가 야훼를 만들었을 뿐이다."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사생아. 일찍이 가나안에 버려졌다가 이집트로 흘러 들어가 아톤과 야합한 뒤 다시 돌아와서는 바알과 내연 관계를 맺음. 훗날 바벨론에 끌려가 마르두크와 아후라 마즈다의 씨를 받은 적도 있어 앞으로 어떤 혼혈의 자식을 낳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논다니' - 아하스 페르츠가 그렇게 단정했다 한들 무어 이상할 게 있겠는가.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끝내 실망하고 돌아선 그였기에, 야훼를 바라보는 눈길도 전보다 한층 엄혹해졌을 수 있는 일이며, 또 그동안의 종교적 체험들도 외곬으로만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그 같은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99

만나가 눈처럼 내리던 광야에서 우리의 신앙이 가장 굳건했으며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했을 때 우리가 가장 충실하게 말씀에 순종했음을 당신도 잘 기억하실 거요. 그러나 저 광야의 내 첫 물음에서 당신은 그걸 거부하셨지요. 당신은 자식에 대한 부양 의무를 저버린 채 효도만을 강요하는 무정한 아버지의 대리인일 따름이었소...

하기야 오늘 당신은 자신 없으나마 몇 가지 희망적인 약속을 하셨소. 구하면 받을 것이오. 찾으면 얻을 것이며,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말하셨소. 자식이 빵을 원하는데 돌을 줄 아비가 어디 있으며, 자식이 고기를 원하는데 배암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셨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기만이라는 것을 당신도 분명 느끼고 계실 거요. 우리가 옛날 그 동산에서 쫓겨난 이래 단 한 시간이라도 구하지 않고 찾지 않은 순간이 있었소? 또 얼마나 많은 영혼이 울며 천국 문을 두드렸고, 그중에 몇 명이 그 문에 들었소? 엘리야 시절에 수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당신 아버지가 엘리야를 보낸 것은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과부 한 사람뿐이었으며, 또 예언자 엘리사 시절에도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것은 시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소. 이미 우리는 구하며 착기에,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울며 서성이기에 지쳤소. 그런데 이제 당신은 그 막연한 약속으로 애써 가꾼 이 대지를 포기하라는 건가요?

그 다음에 당신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셨소. 보복하지 말라 하셨으며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소.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내놓고,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주며,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가주라 하셨소.

진실로 묻거니와, 도대체 당신은 그 모든 가르침의 실천이 우리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믿으시오? 인간의 창조가 오직 당신 아버지의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믿으시오? 그러나 자신 있게 단언하지만 여인의 몸을 빌려 태어난 자 중 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일 것이오. 극소수의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 출발할 것이지만 결코 아무도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 나머지 -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 교훈은 오직 감당할 수 없는 영혼의 짐, 영원히 헤어날 길 없는 죄책감과 절망의 원인이 될 따름이오. 비록 당신으로 하여 율법은 완성될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독선의 완성이 따름이오.

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리를 이대로 두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없다는 절망과 죄책감이 분노의 팔매가 되어 당신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전에.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어진 것은 모조리 누릴 수 있게 해주시오. 말씀으로부터의 자유를. 공허한 약속이나 소름 끼치는 위협이 아니라도 우리가 당신이 근심하는 그런 혼란과 어둠에 묻히는 일은 없을 것이오.

 

355

공변되지 못한 그의 상벌도 이른바 너희 그 죄라는 것을 부추기고 길렀다. 다시 너희 족속의 기록을 빌려 말하리라. 어찌하여 재난은 선악을 불문하고 너희를 찾으며, 행운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너희에게 웃음을 보내는가. 무슨 까닭으로 에사오의 산들은 황무하고 그 산업은 시랑이에게 붙였으며, 야곱의 양 떼는 번성하고 그 기업은 풍요를 감사했는가.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저주는 어찌 그 이루어짐이 온당할 것이며, 롯의 불륜은 어찌 두 번씩이나 용납되었는가. 길보아산아, 너는 어찌 착한 요나단의 뼈를 네 품에 받았으며 예루살렘아, 너는 어찌 형제의 피를 본 다윗의 간생자가 지혜와 왕좌를 누림을 보았는가. 스가랴를 친 돌은 어찌 그리 날카로웠으며, 예레미야를 친 돌은 어찌 그리 힘찼던가. 야훼가 진실로 사랑했다면 어찌 선을 쌓고 의를 따른 자가 화를 입을 것이며, 또한 진심으로 미워했다면 어찌 악을 밭 갈고 독을 씨 뿌린 자가 복을 거둘 수 있었던가.

그런데도 그 정체 모를 죄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도 많은 너희들은 가혹하게 벌 받았으며, 지금도 벌 받고 있다. 참으로 너희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먼저 있은 본성을 뒤에 온 말(씀)에 맞추지 못한 죄, 굶주림과 목마름을 조용히 참으며 죽어가지 못한 죄, 힘없이 죽음을 당하거나 빼앗기지 못한 죄, 위선으로라도 육욕을 참아내지 못한 죄, 간교로워 독선에 아첨하지 못한 죄,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새 자기부정에 빠진 그의 변덕스럽고 자의적인 선택에 들지 못한 것 뿐이었다.

 

371

우리의 성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우리가 기뻐함을 자랑으로 삼으려 하지 마라. 우리는 너희 악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창조의 일부이므로. 선을 높이고 상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 또한 우리에게서 간 것이므로. 우리가 준 게 무엇이든 너희는 겨자씨만 한 것도 더하거나 덜지 못한다. 너희 모든 행위는 하늘에서도 땅 위에서도 아무런 빛깔이 없다.

그러하되 우리의 분별과 간섭이 없어진 뒤에도 너희 사이에서 선은 존중되고 사랑과 자비는 장려받을 것이다. 우리가 기뻐해서가 아니라 그게 너희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악은 여전히 비난받고 미움과 다툼은 억제받아야 한다. 그 또한 우리가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게 너희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리라. 그래야만 너희가 너희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므로. 도둑질 하지 마라. 그러면 도둑맞지 않으리라. 간음하지 마라. 그래야만 너희 아내와 딸들이 정숙하게 남게 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면 이웃도 너희를 사랑하리라. 그 밖에도 더 많은 원칙들이 남을 것이나, 그것은 이미 낡은 계명이나 율법의 계속은 아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짐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올려 세워진 너희끼리의 합의일 뿐이다....

그날에는 부질없이 하늘을 우러러 우리를 찾지 말아라. 우리는 땅위에 너희를 세웠으니 구원도 용서도 땅 위에서 구하라.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를 억압하고 우리의 거룩함을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희에게 빼앗아서 우리에게 더할 아무것도 없으며, 너희를 낮추고서 우리를 높일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너희 고통 위에 우리 즐거움이 있을 리 없고, 너희 슬픔이 우리 기쁨이 될리 없다. 너희를 가장 잘 섬긴 자가 곧 우리를 가장 잘 섬긴 자이며, 모든 것은 너희에게서 비롯되고 너희에게서 끝나리라.

 

388

"옛 하나님과 그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소. 여자와 노예들의 종교, 그 독선과 피학의 열정 속으로... 쓸쓸하고 두렵다는 거였소. 웃지 않고 성내지 않는 우리의 신,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꾸짖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는 우리의 신 - 그 신에게 이제 지쳤다는 거요. 선악의 관념이나 가치판단에서 유리된 행위. 징벌 없는 악과 보상 없는 선도 마찬가지로 공허하다는 거였소."...

"그는 또 말했소. 신학의 탈개인화든 혁명의 신학이든, 또는 그 이상 마르크시즘과 손을 잡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신 안에' 남아 있었어야 했다고. 불합리하더라도 구원과 용서는 끝까지 하늘에 맡겨두어야 했다고. 그러고는 단정했소. 우리는 무슨 거룩한 소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새로운 신을 힘들여 만들어냈지만. 실은 설익은 지식과 애매한 관념으로 가장 조악한 형태의 무신론을 얽었을 뿐이라고. 우리가 어김없이 신이라고 믿었던 것은 기껏해야 저 혁명의 세기에 광기처럼 나타났다가 조롱 속에 사라진 이성신이거나 저급하고 조잡한 윤리의 신격화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런 다음ㅇ 과장된 참회와 더불어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겠다고 했소."...

"그러나 나는 그를 따를 수가 없었소. 그는 스스로 만든 것이니 스스로 허물 수 있었으나, 나는 그에게서 전해 받은 것이라 내 힘으로는 허물 수 없었소. 또 실천에 있어서도 그는 언제나 망설임과 회의로 초입에서 머뭇서렸으니 돌아나가기 쉬웠으나 나는 이미 너무 깊숙한 곳까지 빠져들어 다시 돌아갈 길이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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