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네다 2020. 9. 2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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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제니퍼 라이트Jennifer Wright 저 / 이규원 역

산처럼

 

183 나병

이런 이야기는 암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버려졌다고 느낀 나환자들에게 다시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분명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나환자 악단이 심야 쇼 프로에 출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환자들은 그들의 삶이 두 번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로 바란 건, 병에 걸리기 전에 즐겼던 활동에 어떻게든 참여하여 잠시나마 평범했던 예전의 자신을 느껴보는 것이었을 테다. 아마도 그것이 질병을 앓는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도보 경주에서 발가락 없는 환자가 출발선에 '발가락 끝을 대지' 못했을 때 절망이 아닌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다미앵이 나눠준 피리를 수가 모자란 손가락으로 연주할 때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215 스페인독감

그 질병은 건강한 면역계를 과도하게 자극시켜 자신의 몸을 공격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의학 용어를 조금 더 써서 설명하면 스페인독감은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라 불리는 것을 촉발시켰다. 사이토카인 단백질은 체내에 감염이 발생했을 때 면역세포의 방출을 조절한다. 건강한 면역계는 이 작은 녀석들을 대량으로 갖고 있다.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나면 너무나 많은 면역세포가 감염 부위로 몰려들어 주변에 염증을 유발한다. 감염 부위가 폐라면 - 스페인독감같은 호흡기 질환의 경우 - 염증이 생긴 폐에 체액이 가득 고인다. 그럼 죽는 것이다....

미국 한복판에서 이성애자인 젊은 백인 남성들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 간과되었다니 제정신이 아니다....100년 전의 신문기자들은 정말로 우둔했나? 아니다. 감옥에 가기 싫어서 보도하지 않은 것뿐이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사기 진작을 위한 법이 통과되었다. "미국 정부에 관한 불충하거나 모독적이거나 악의적이거나 독설적인 표현을 발언, 인쇄, 집필, 혹은 출판하면" 20년 동안 수감될 수 있었다. 헌법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방대법원이 받아들여 "사회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될 만한"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씽크 대 미국연방정부) 따라서 북적이는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외치거나, 무서운 질병이 퍼지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언론은 훨씬 더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국토방위법Defense of the Realm Act에 따라 "폐하의 군대나 민간인 사이에 불만이나 공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을 말이나 글로 퍼뜨려서는 안 된다"라고 공표되었다. 영국에서 '저널리스트 반역자'는 처형될 수 있었다.

...오늘의 뉴스에 진저리를 내는 누군가가 좋은 소식만 보도하는 신문을 원한다고 말한다면, 이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시도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자. 그 시도는 그리 잘 되지 못했다. 냉전Cold War이라는 말을 고안한 평론가 월터 리프먼은 미국에 유리한 기사만 발표하는 보도국의 신설을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리프먼은 국민 대부분을 '정신적으로 어린애 혹은 야만인'이라고 취급했기 때문이다. 윌슨은 리프먼의 메모를 받은 다음날 공보위원회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를 설치하여 조지 크릴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공보위원회는 곧바로 미국의 위대함에 관한 수많은 기사를 뿌려댔고, 신문사들은 이를 편집 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게재된 글이 반미주의라고 해석될 것을 두려워한 편집자의 입장에서도 지면을 메울 기사들이 저절로 생겨나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에스파냐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이었다. 즉 에스파냐 언론은 투옥되거나 매국노 딱지가 붙을 염려 없이 독감과 그에 따른 사망자 수의 증가를 보도할 수 있었다. 1918년 5월 22일, 에스파냐의 신문들은 많은 국민이 걸리고 있는 신종 질병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5월에는 여러 축제가 있었는데, 관계자 전원이 질병에 걸리자 처음에는 식품 매개로 전염된다고 생각되었다. 놀랍게도 5월 28일까지 알폰소 국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인 800만 명이 감염되었다.

...유행에 따른 사망자가 증가할수록 해외에 더 많은 미군이 필요해졌다. 9월 15일까지 600명의 군인이 입원했다. 해군 병원이 초만원이라 환자들은 민간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했고, 그곳을 그점으로 질병이 더 멀리 퍼져나갔다.

이는 당국이 사람들에게 외출하지 말도록 엄중히 권고하기에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또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걸린 환자를 다른 질병을 앓는 환자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지 말도록 이 상황에서 대대적인 은폐보다 더 나은 해결책은 몇 가지나 있을까?

많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당국은 대대적인 은폐 공작을 선택하고 위협을 계속 경시했다. 보건국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발을 마른 상태로 유지하고 인파를 피하도록 권고했다. 실제의 위험을 강조했더라면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인파를 피하라는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9월 28일의 자유차관Liberty Loan 퍼레이드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 하워드 앤더스 - 이 책에서 다루는 영웅들 중 한 사람으로서 부각되어야 하는 보건 전문가 - 는 퍼레이드의 위험성을 써달라고 기자들에게 간청했다. 그는 이미 해군 의무감에게 편지를 보내 연방 당국에 "군인과 필라델피아 시민의 보로를 요구"하도록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퍼레이드에 사람들이 모여들면 수천 명의 시민이 인플루엔자에 걸릴 것이라고 확신했고, 이는 옳았다. 그러나 모든 신문이 사기 저하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 그가 퍼레이드를 "대화재를 일으키기에 안성맞춤인 가연성 무리"라고 멋지게 표현해가며 질병 때문에 필라델피아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걸 알렸지만 -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232 스페인독감

기세가 누그러진 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1918년 12월 28일, <미국 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은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1918년이 지나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이 종결된 중대한 한 해였다. 적어도 당분간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파괴가 끝났음을 기념하는 해, 불행히도 수없이 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한 해였다. 4년 반 동안 의학은 인간을 포화 속으로 밀어넣고 그곳에 잡아두는 데 전념했다. 이제는 인류 최대의 적 - 전염병 - 과 맞서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그러나 별로 싸울 것도 없었다. 다음 겨울에 전보다 약해진 3차 확산이 왔지만, 그리고 1920년대 내내 주기적으로 유행했지만 가장 치명적인 시기는 지나 있었다.

 

스페인독감이라고 알려진 바이러스성 질환은 스페인에서 발병한 것이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기원하여 급속하게 확산되었던 질병이다. 미국의 지도부는 전쟁에 임하고 있는 자국의 청년들과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대신에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언론으로 하여금 이 전염병 또는 대량의 사망과 관련된 보도하는 것을 억압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의 실체와 공포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간과한채,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고 임의로 다수의 모임을 열고 거기에서 질병을 얻고 퍼뜨렸다. 전염병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공포를 전파한 것은 스페인이 거의 최초이자 유일했는데,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이 전염병의 별명이 스페인독감이 되었고, 스페인은 사람들에게 악명만을 얻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고찰한다면, 스페인독감은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아집에 사로잡힌 미국, 미 행정부의 실패이며, 뼈아픈 실책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염병의 확산을 억제하고 치료를 앞당기는 것은 투명하고 광범위한 정보의 배포이며, 그 뒤에는 반드시 엄밀하게 정보를 검토하고 균형 잡힌 관점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과제로 나온 책은 읽지 않는 개인 원칙을 위배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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