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
보물 제165호. 이 건물은 1452년(문종 2)에 등제하여 대사헌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고택에 딸린 별당으로, 1536년(중종 31)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一)자집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이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한다. 커다란 장대석으로 쌓은 단층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으로 처리한 이익공(二翼工)집이다. 앞면에는 띠살창호를, 옆면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이 건물은 한국주택사에서 현존하는 유구(遺構)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방과 대청으로만 구성된 별당만 남아 있고, 본채가 없어 조선 초기의 주택구조를 알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강릉 수산물 시장
영월 청령포
영월읍 내에서 서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으며,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루었다.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육지와 이어지는 남쪽은 육륙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다. 그 때문에 이곳에 유배되었던 단종(端宗)이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이곳에 유배된 것은 1457년(세조 3) 6월이다. 그해 여름에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8월에 처소를 옮기고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시를 읊으며 한을 달래기 몇 달 만인 같은 해 10월 눈을 감았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유지비각(遺址碑閣)과 후세에 세운 청령포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려고 쌓은 것이라고 하는 돌탑(속칭 망향탑)이 유지비각 서쪽 절벽 위에 서 있다.
영월 장릉
사적 제196호.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4리에 있다. 단종이 세조의 왕위찬탈로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상왕복위계획이 탄로되어 죽음을 당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선조 때 김성일(金誠一)·정철(鄭澈) 등의 장계(狀啓)로 묘역을 수축하고 표석을 세웠다. 1610년(광해군 2) 노릉암(魯陵庵)이라 했으며 1668년(현종 9)에 수호하는 참봉 2명을 두었다. 1681년(숙종 7) 대군(大君)으로 추봉되었으며 1698년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상설(象設)은 추봉된 정릉(貞陵)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을 설하지 않았고, 양식은 간단하게 작은 후릉(厚陵) 석물의 것을 따랐다. 따라서 장릉의 석물은 숙종·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석물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며, 명릉(明陵:숙종의 능) 이래 만들어지는 4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은 장릉에서 그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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