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Books |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화려하게 핀 '문명'으로 일어나 피할수 없는 '운명'으로 시들다
로마제국 쇠망사(전6권 중 1·2권)
에드워드 기번 지음|송은주·윤수인·김희용 옮김
민음사|1권 696쪽, 2권 564쪽 1권 3만원, 2권 2만5000원
"서기 2세기의 로마 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토와 가장 문명화된 인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광대한 군주국의 변경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명성과 엄격하게 훈련된 용맹으로 지켜졌다." 이 고전(古典)의 서두는 이렇게 장엄하면서도 자신감과 오만이 넘치는 어조로 시작된다.
1788년 계몽주의 시대에 완간된 이 책은 그 자체로 서구문명의 위대한 유산 중 일부였다. 초등학교 시절 토머스 에디슨의 위인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린 에디슨의 독서 목록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이 책의 저자에게 "당신은 이 저서 하나로 유럽 문단의 최고봉에 섰다"고 말했다. 영국 역사가 존 버리는 이 책의 저자가 "모든 시대를 초월한 스승"이었다고 평했다. 심지어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조차 장편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집필 동기가 이 책에 있었다고 말했다.
서로마 제국 말기인 서기 410년 서고트족의 로마 침입을 표현한 판화. 새들러의《고대 로마의 유적》(1906)에 실린 그림이다. /민음사 제공
지금까지 국내에서 에드워드 기번(Gibbon·1737~1794)의 이 책이 번역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중역본(重譯本) 아니면 축약본이었다. 첫 원문 번역으로 올해 말까지 나올 전6권 중 두 권이 먼저 나온 이번 번역본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여 준다.
거대한 문명이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비장하게 서술하면서도, 그 방대한 기본 사료들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는다. 권력욕과 배신과 전쟁과 찬탈 같은, 책의 분량만큼이나 방대한 인간의 모든 악덕(惡德)들이 모여 위대한 문명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팍스 로마나'의 절정이던 서기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 시기부터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1300여 년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의 집필에는 20년이 걸렸다.
수많은 독서, '그랜드 투어'와 뛰어난 언어 능력을 통해 이뤄진 저자의 깊은 교양은 유려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곧바로 본질을 서술하는 탁월한 문장들을 낳았다. "로마 황제들의 행적이 어떠했든 그 운명은 모두가 동일했다. 평생 쾌락에 탐닉했든 덕스러웠든, 가혹했든 관대했든, 나태했든 영광스러웠든, 불시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신플라톤 학파 학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계의 비밀들을 탐구하려고 시도하면서, 철학 연구를 오히려 마법에 대한 연구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영문학사(英文學史)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번은 '긴 단락을 하나의 문장에 넣어 귀로 음미해 보고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손질을 하고 펜을 움직였다'고 한다.
책이 나온 지 300년도 더 지났기 때문에, 지금의 시각에선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스키타이와 타타르족을 설명하면서 "야만인들의 관습이 변화가 없는 것은 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라며 로마제국의 '문명'과 극명히 대비시키는 부분 같은 것이다.
이번 번역본은 본문을 완역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명 '기번의 잡담'으로 불리는 4700여 개의 기나긴 각주 중 350개는 생략해 버렸다. 출판사측은 "하지만 영어판을 제외한 어느 판본보다 많은 각주가 실렸다"고 밝혔다.
원제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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