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일본의 재구성

네다 2008. 8. 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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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연합뉴스
일본이 무책임한 나라가 된 이유는
'일본의 재구성' 출간
노시내 옮김. 550쪽. 2만6천원.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일본은 한국에 어쩔 수 없는 ’가깝고도 먼 나라’다.

한국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상처를 남기고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통석의 염’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피해가는 나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와 온 국민을 공분하게 하는 나라. 모두가 알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기들만 모른다고 외면하는 무책임한 나라이기도 하다.

왜 일본은 그처럼 무책임한 것일까. 일본의 국민성이 원래 그런 것일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등의 특파원으로 20여 년간 아시아 각지에서 활동했던 패트릭 스미스는 ’일본의 재구성’(마티 펴냄)을 통해 “국민성과는 상관없는 문제”라며 일본이 왜 ’국가적 정체성이나 역사의 기억과 망각이라는 문제에 관한 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가’를 분석해 나간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IHT의 도쿄 지국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저자는 현대 일본이 처한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일본은 일본 국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전후의 미국이 만들어 놓은 일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 덕분에 일본은 ’과잉보호 상태에 있으면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비교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 냉전이 초래한 독재에서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를 얻었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미국이 만들어 놓은 체제에 별다른 저항 없이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저자는 미국이 또 덴노(일왕)의 죄를 덮어버림으로써 점령군이 단숨에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를 조장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분위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역사는 부인할 수 있는 것이 됐고 이후 무책임이라는 사조가 정치.교육.외교 등 각 분야에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승전자의 처분 때문에 한 나라의 전면 개조 계획이 뻔한 사기로 시작됐다”며 “겉보기에만 그럴 듯 하면 그만이었고 실질적인 내용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1947년 만들어진 평화헌법과 1951년 체결돼 그 다음해부터 실행된 미일상호안보조약에 대해 ’정치적.외교적 정신분열증의 걸작’이자 일본이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질병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이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헌법의 개정 논의와 함께 미일상호안보조약의 폐기를 주장한다.

전쟁 포기를 규정하는 제9조를 포함해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일본의 ’역사 노이로제’의 유일한 치유책이라는 저자의 시각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어쩐지 불편하다. 저자의 주장은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에서 벗어나 일본 스스로가 자신들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기된 것임을 이해하더라도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