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뮤지컬 <조로>

네다 2011. 12. 2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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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주경제

 

 

 

 

뮤지컬 조로 Zorro

2011.12.21(수) 20:00 한남동 블루스퀘어

조승우 조정원 문종원 김선영

 

조로Zorro는 거의 모든 마블코믹스 영웅들의 원형이다. 범상치 않은 출신에도 불구하고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뜻하지 않은 불운, 자아의 극복과 숙명의 발견, 악당의 최후와 권선징악, 그리고 사랑의 쟁취와 헌신적인 이성의 희생 등, 전형적인 영웅서사의 낭만을 극대화하고 극적인 요소를 한껏 강조하는 스토리이다. 1919년 영국 통속소설 작가 존스턴 매컬리는 '카피스트라노의 저주' 5부작에서 페르소나 돈 디에고를 내세워 억압과 부조리에 저항하고 위대한 꿈을 꾸고 싶어하는 민중들의 원초적 감각을 자극했다. 영웅 이야기는 어차피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인류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이자, 가장 공정하고 긍정적인 이야기 아닌가. 특히 의도적으로 고귀한 출신임을 숨기고 정의를 행하다, 결정적인 순간 진실이 밝혀지면서 영웅 효과가 극대화 되는 이야기는 모든 남자들의 남성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낭만이 제인 오스틴과 할리퀸 소설이라면 남성들의 낭만은 모든 히어로들을 거쳐 조로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로 이야기의 원본은 영원하다 하더라도, 시대마다 그것을 어떻게 각색하고 나아가 공연하는가는 감독과 제작자의 성향이나 역량을 떠나서 시대의 입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등장하는 여성들을 연약하고 순종적으로 그리는 반면, 남성들간의 긴장과 대결, 야수들의 싸움을 진하게 표현한다면, 마초이즘을 농축시킨 진정한 창건신화가 될 것이다. 독재와 억압의 시대상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새로운 주권 탄생을 이끌어 내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낸다면, 혁명 열사의 영웅담이 될 것이다. 어떤 캐릭터와 어떤 상황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수만가지 색다른 각본과 공연이 나올 수 있다. 남자들이 등장하는 영웅물은 무식하고 진부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조로는 오히려 무한한 매력을 창출해내는 위대한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로 뮤지컬은 'We Will Rock You' 'King & I'를 제작한 크리스토퍼 랜서가 연출을 맡아 2008년 최초 개시 되었으며, 이번 한국 공연은 'Jekyll & Hyde' 'Spamalot'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했다. 음악감독은 '미스 사이공' '서편제' 등에 참여한 김문정 감독이 담당했다.

 

조로 뮤지컬은 악행을 일삼는 악인의 진실과 비애, 악행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을 진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악인에도 초점을 맞추는 한편, 영웅을 후원하고 동행하며 영웅을 위해 적극적으로 희생하는 여장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현 시대 여성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웅의 고난 극복과 승리로의 여정을 그리는 원본은 그대로 담아내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주연은 뛰느라 지치고 오히려 조연들이 화려한 볼거리를 많이 보여준 것은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특히 조승우 같이 복잡한 심리상태를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스포츠와 드라마를 동시에 소화하기 위하여 들여야 하는 노력은 오히려 낭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도 가장 극명한 영웅이 주인공이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평범한 배우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역이 조로라는 생각이 든다. 체력과 발성, 아름다운 체형과 멋진 춤실력만 받쳐준다면, 평범한 배우라도 어느 정도 동경받을 수 있는 영웅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 스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반대로 조승우가 조로가 아닌 라몬을 연기했다면 또다른 맛이 나지 않았을까 예측해본다.

 

 

출처 뉴시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이번 조로 뮤지컬은 악인인 라몬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깊게 담아내고 있다. 과거 자기 자식은 거의 버려둔채 주인의 자식에게 헌신해야 했던, 심지어 죽을때까지 주인의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며 느꼈을 박탈감과 소외감, 자신이 바라보는 여자가 다른 남자만을 바라보는 패배감과 분노, 자신은 절대로 이룰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동경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위인상, 악행을 통해 얻는 죄책감과 이를 잊기 위해 또다시 행하는 악행의 굴레. 이 모든 것들이 라몬을 위하여 탄탄하게 마련된 시나리오인 것이다. 시민들을 억압하고 영웅을 탄압하는 악인이지만, 결국에는 자살밖에 할 수 없는 라몬을 보며 도대체 권선징악이라는 정의가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돌리기 힘들었던 것 아닐까.

 

한편 자유로운 영혼 속에 강인한 의지, 헌신적인 태도와 짙은 모성성으로 여주인공 루이사보다도 더 강인한 인상을 남기는 이네즈는 동료와 신하로서 최고로 매력적인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가르시아와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양념으로 더해주며, 집시파를 리드하며 조로의 반란을 성공으로 이끄는 그녀는 뮤지컬에 없어서는 안될 진실로 절대적인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인생에 안절부절하는 다른 주인공들 사이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인생을 통달한 듯한 선문답을 하는 그녀가 매력적인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깊은 감정과 여운이 남는 라몬이나 이네즈였기에 죽을때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은 아쉬웠다.

 

뮤지컬은 1,2부로 구분되는데, 대부분의 스토리는 1부에서 다 보여주고, 2부는 주로 시각효과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앙상블에게는 2부 아니면 출연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2부에서는 화려한 군무가 공연을 정신없이 수놓는다. 한 곡이 끝나자마자 다른 곡이 뒤를 잇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플라멩코의 즐거움에, 3시간이라는 긴 시간도 어느새 금방 간다. 동시에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콤비 플레이와 유머는 공연의 긴장도를 유지하는 또다른 재미다.

모든 뮤지컬이 다 그렇지만 특히 조로 뮤지컬은 배우들에게 강한 체력과 끊임없는 활동성을 요구한다. 배우들은 3시간 내내 실제로 펜싱, 줄타기, 낙법 등과 같은 무술을 시연하고, 플라멩코나 탭댄스 등의 춤을 구사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칼부림, 군무와도 같은 대결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좀처럼 갖기 힘든 역동적인 경험이다. 단체 플라멩코, 탭댄스 등의 춤은 화려하면서 흥겹고, 의자를 이용한 플라멩코나 루이사의 결혼 준비 장면은 매우 신선하고 전위적이다.

추상적인 무대시설은 활용도가 높다. 밧줄을 타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조로의 움직임을 잘 보조해주고, 필요에 따라서 간편하게 배와 방, 동굴로 변신할 수도 있다. 가장 강한 느낌을 주는 공간은 라몬의 사무실로서, 거대한 방 한 가운데에 설치된 전신거울은 라몬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한남동 '블루스퀘어'는 뮤지컬-콘서트 전문 공연장으로, 서울시 첫 민자사업 공연장이며 '인터파크 씨어터'가 지었다. '칠채홍' '리스또란떼 크라제' '디초콜렛 커피' 등 식전후를 보장할 수 있는 음식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장점이다. 뮤지컬 전용 삼성전자홀(1,760석)은 1층과 3층 좌석이 있다. 전반적인 음향시설과 무대 시설은 매우 훌륭하나, 1층 주변부 좌석은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고, 전장을 넓히기 보다는 고도를 높인 3층은 배우들의 정수리가 주로 보이고 앞사람의 뒤통수가 시야 절반을 가리는등 뮤지컬을 충분히 즐기기에 애로사항이 많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뮤지컬 조로에 찬사를 보낸다면, 그것은 뛰고 달리고 줄타고 착지하는, 배우들의 진짜 땀내 때문일 것이다.

 

<일부 정보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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