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네다 2012. 10. 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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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것을 생가가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 창간호(1948. 10)

 

 

 


<해설>


*샅: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왕골로 짠 돗자리보다 거칠다.

*쥔을 붙이었다: 잠시 머물러 잘 수 있는 집을 정했다. 사전에는 ‘주인 잡다’라는 말이 나온다.

*누긋한: 메마르지 않고 눅눅한.

*딜옹배기: 질흙으로 빚은 옹배기(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벌어진 작은 그릇).

*북덕불: 북데기(짚이나 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로 피운 불.

*쌔김질: 새김질. 반추

*나줏손: 저녁 무렵.

*섶: ‘옆’의 방언.

*갈매나무: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5미터이며, 가지에 가시가 있고 껍질은 암회색이다.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이겨내게 하는 상징적 사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시는 1948년 10월 『학풍』창간호에 게재되었는데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학풍』은 주로 학술적인 내용의 글을 싣는 월간 종합지였다. 발행처는 을유문화사로 되어 있고, 편집 주간은 조풍연이 맡았다. 책 뒤의 출판부 소식란을 보면 “서정시인 백석의 백석시집이 출간된다.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시인들은 과연 얼마나 이 고고(孤高)한 시인에 육박할 수 있으며, 또 얼마나 능가할 수 있었더냐. 흥미있는 일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발행처인 을유문화사에서 백석의 시집을 간행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조풍연의 편집 후기를 보면 신석초와 백석의 해방 후 신작을 얻었다고 적어 놓았는데, 창간호에는 백석의 작품만 실리고 신석초의 작품은 다음 호에 실렸다. 조풍연은 해방 전에 이미 『삼사문학』동인으로 활동했고 『문장』과 『인문평론』등을 편집하여 문인들과 교류가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경로를 통하여 백석의 시집을 내기로 했을지 모른다. 만일 백석의 친구인 소설가 허준이 지니고 있던 작품을 발표한 것이라면 편집 후기에 그 사실이 언급되었을 텐데 그런 언급은 없다. 특히 이 시가 보여 주는 형식적 안정감과 유장한 호흡, 원숙한 짜임새는 그 이전의 시와는 다른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백석의 해방 후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이고 ‘박시봉’은 사람의 이름이다. ‘方’은 편지를 보낼 때 세대주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이다. 제목의 평범한 뜻과는 달리, 이 시는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외로운 떠돌이가 되어 바람 센 거리를 헤매는 화자의 가련한 처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첫머리에 나오는 “어느 사이에”라는 말은 화자의 가혹한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자신도 지각하지 못한 사이에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실의 끝판으로 내몰린 자의 뼈저린 탄식이 이 말에 응축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처처절한 고립에 빠진 한 남자가 자기가 살아온 내력을 돌이켜 볼 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운명의 곡절에 의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때 터져 나오는 발성이 ‘어느 사이에’일 것이다. 한때는 웨이브 진 머리를 휘날리며 광화문통 네거리를 활보하던 신문기자였으며 또 한때는 더블브레스트 연둣빛 양복을 입고 유창한 발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영어 교사였는데, 어느 사이에 이런 낙척(落拓)의 떠돌이가 되었는가. 어떻게 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몸을 누일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 헤매는 초라한 처지가 되었는가.

 

그는 가정의 구성 요소인 아내, 집, 부모, 동생들과 떨어져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을 헤매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바람 센’은 고초가 많았음을 나타내고 ‘쓸쓸한’은 자신의 외로움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쓸쓸한 거리’라 하지 않고 굳이 ‘거리 끝’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어디에도 동화되지 못한 채 국외자로 떠돌았던 자신의 처지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는 바람 센 쓸쓸한 거리나마 그곳을 당당히 걸어간 것이 아니라 그 거리의 한 끝을 서성이며 막막한 방황의 나날을 보낸 것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바람은 더 세게 불고 추위도 심해지는데 거처를 잃은 화자는 어느 목수네 집 문간방을 하나 얻어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물론 그 방은 제대로 된 방이 아니라 헌 삿자리를 깐 임시 거주용 방으로 음습한 냄새도 나고 냉기가 감돈다. ‘딜옹배기’에 담긴‘북덕불’은 제대로 된 화로가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보온 수단이니 화자가 처한 처지가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무위의 시간을 보내는 화자는 조그만 화로의 재 위에 무의미한 글자를 써 보기도 하고 방안을 뒹굴며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을 되씹어 보기도 한다.

 

사람이 절망의 극한에 몰리면 누구든 죽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시의 화자 역시 지나온 일을 생각할수록 슬픔과 회한이 사무쳐 종국에는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 위기의 순간에 화자는 “고개를 들어,/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상실의 끝판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화자는 결국 나보다 더 크고 높은 어떤 것, 예컨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같은 것이 자신을 마음대로 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것을 운명론적 체념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 버린다는 점에서 소극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 절망의 고통을 치유하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며칠을 보내자 마음이 정리되면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던 슬픔과 회한도 앙금처럼 가라않아 외롭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화자의 방 문창에 싸락눈이 부딪힌다. 외부 상황의 변화는 언제 또 다시 그의 외로움을 처절한 상실감으로 바꾸어 버릴지 모른다. 싸락눈이 문창을 치는 스산한 저녁이면 그는 마음을 다잡고 생의 의욕을 가져 보려 한다.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는 그러한 태도의 간접적 표현이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구체적 상징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백석의 경우 그것은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표상되었다. 갈매나무는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갈매나무가 세속의 굴레를 벗어나 고고한 지평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고고한 갈매나무는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하얗게 눈을 맞으면서도 자신의 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시인은 그 갈매나무를 떠올리며 자신의 신산한 삶을 견뎌내려 하는 것이다.

 

이 시는 평이한 언어와 표현으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냈다. 여기 담긴 감정의 추이 과정은 인간 체험의 보편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기에 이 시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안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시는 추상의 차원에서 벗어나 구체적 정황을 열거하면서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갈매나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려 했다. 추상적 사유를 구체적 이미지로 바꾸어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백석 시의 또 다른 변화를 암시하는 분기점에 놓인 작품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민족 분단에 의해 백석의 백석다운 시가 여기서 중단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어 정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

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시 전편 해설

<백석을 만나다> 이숭원. 태학사

 

 

 


시신을 해부하는 의대생들만큼이나 시를 해부하는 문과생들도 비위가 좋다. 의대생들중 누구는 악취나 징그러움에 구토를 한다고 하는데, 문과생들중 그런 케이스는 들은적이 없으니 더 비위가 좋다고 해야하나. 독자들이 연으로 행으로 단어로 글자로 획으로 이해하는 것도 작가들의 창작의도에 들어있었을까. 아무것도 아닌 시를 무엇을 만드려고 하는 노력도 물신주의이다. 문학을 상업화하려는 저속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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