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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15 진안 마이산과 전주 한옥마을

네다 2013. 8. 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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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국내여행 1001 |  그린 내 사진

 

 

마이산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두 암봉으로, 동봉(수마이산)과 서봉(암마이산)이라고 한다. 높이는 동봉 678m, 서봉 685m 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충계가 있고, 동봉 중턱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마이산이라는 이름은 쫑긋한 말의 귀를 닮았다 해서 태종 이방원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때는 용출산(龍出山)이라고 했고,  태조 이성계는 라고 불렀다. 또한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같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 이라 부른다. 1979.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3.8월 충북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3.10월 명승으로 변경되었다.

 

마이산 풍수 형국과 관련하여 전설이 하나 있다. 마이산에는 남녀 두 산신이 있었다고 한다. 일정기간 수도를 거쳐 마침내 승천할 기일이 되었다. 남신은 사람들이 승천장면을 보면 부정타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했고, 여신은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여신의 주장대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느네, 마침 새벽에 물길러 나왔던 아낙이 이를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 하고 놀라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두 산신의 승천이 무산되었다. 이에 화가 난 남신은 여신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지금의 애기봉을 아빠봉 곁에 두었고 여신은 토라져 뒤돌아 다소곳이 외면하여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산 남쪽 암벽에 부스러져 나간 흔적이 많이 있는데 이를 보고 '옛날 이곳이 바다였을때 고래가 파먹은 자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이산 금당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814년(현덕왕 6) 중국 승려 혜감이 창건하였다. 사찰의 위치는 마이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위치한다.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약 300여 년 전에 현재의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대웅전은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마이산 탑

 

마이산 탑사로도 유명한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은 조선 후기 임실에 살던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1885년 입산하여 은수사(銀水寺)에서 수도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고 1900년 무렵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10년에 걸쳐 120여개에 달하는 여러 형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쌓아올려 조성한 탑은 높이 1m에서 15m까지 높이와 모양이 다양하다. 이갑용은 축지법을 이용하여 낮에는 멀리서 돌을 날랐고 밤에는 탑을 쌓았는데, 천지음양의 이치와 8진도법을 적용하여 돌을 쌓아올려 태풍과 비바람에도 돌탑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였다. 탑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석질에 순인력(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는 피라미드형 돌탑 등 80여개가 남아있다. 겨울에 탑 단위에 놓인 대야에 담긴 물이 하늘을 향하어 얼어오르는 역고드름 또한 유명한 볼거리이다.

 

마이산 탑사

 

이갑용은 1920년대 초 초가암자를 지어 돌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 목조함석지붕의 인법당과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이름도 없던 절은 이갑용이 지은 탑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갑용은 손자 이왕선이 한국불교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으며, 1986년 인법당을 대웅전으로 고쳐 짓고, 1996년 나한전(現 영신각), 1997년 종각과 요사채를 지어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 앞으로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이, 대웅전 뒤 절벽쪽으로 오방탑, 천지탑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전주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걸쳐 700여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1977년 한옥마을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우리 전통의 가옥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새로 짓는 가옥도 한옥 형태로 짓고 있따. 원래 마을이 형성된 것은 1930년대 양곡 수송을 위하여 전군가도가 생기면서 전주부성이 허물어지자, 서문 밖 천민 거주지역에 모여살던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세력을 형성하자, 이에 반발하여 조선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한옥마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 전동성당, 선조때 수립된 전주향교와 이성계가 왜적을 무찌른 후 승전 기념으로 지은 오목대, 상류층 가옥의 전형적인 예로 꼽히는 학인당 등 유적을 비롯하여 전통 술박물관, 한지원, 한방문화센터와 더불어 소설 '혼불'의 작가 故최명희를 기리는 최명희 문학관, 전주전통문화센터가 있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숙박하며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전주 향교의 부속건물인 양사재와 조선의 마지막 황손이 머물고 있는 승광재가 같이 자리한 설예원, 전통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세헌, 넓은 마당이 인상적인 동락원에서도 한옥 체험 숙박이 가능하다.

 

전주 경기전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보호면적은 49,590㎡이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경역은 정전(正殿)과 조경묘(肇慶廟)로 나뉜다. 정전(보물 1578)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조경묘는 정전 북쪽에 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경기전 조경묘 도형의 그림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전사청·동재·서재·수복방·제기고 등 부속건물들과 별전이 따로 있는 광범위한 성역이었다.

 

전주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성당 터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윤지충, 권상연)가 나온 곳이다.

 

1889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보드네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공사를 시작하여 1914년 완공되었다. 화강석을 기단으로 사용한 붉은 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스크의 주조에 비잔틴풍이 가미되어 있어 건물 본체와 잘 어울린다. 1988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다.

 

영화 「약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텅 빈 성당에서 슬픈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한데 성당 내부의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우며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과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들을 배치한 상부의 조화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여행사 당일여행 팁

 

시청역(4번출구 프레스센터)에서 06:40, 사당역에서 07:00에 정차하고 진안으로 출발한다. 내려갈때는 정안 휴게소에서, 올라올때는 입장 휴게소에서 쉰다. 둘다 여자화장실 줄이 길다.

 

마이산은 절보다도 절에 가는 길이 좋다. 길지는 않지만 양옆으로 가로수(플라타너스?) 조성되어 있고, 길도 잘 포장되어 있다. 금당사는 대웅전과 기타 전각 2개, 탑사는 대웅전 1개로 규모가 크지 않다. 절의 느낌 보다는 관광지 같이 느껴진다.

 

원래 일정은 마이산에서 중식을 먹는것인데, 마이산 출입 자락에 있는 식당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ㅂㅓㅈ*ㄴㅏㅁㅜ ㄱㅏㄷㅡㄴ 돌솥비빔밥 1만원) 정안 휴게소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버스나 보도 주변에서 먹는 것이 낫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예쁜 식당과 카페와 군것질거리가 많이 있는데 군것질거리로도 배를 채울수 있다. 특히 임실이 가까워서인지 치즈 등 유제품과 전통과자, 전통음료 등이 많다.

 

전동성당 본당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이 훨씬 예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명동성당 못지 않다. 경기전은 대나무 숲이 좋다.

 

한옥마을은 위에서 기와를 내려찍어야 사진이 잘 나오는데 그런 장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을 뒤쪽 언덕에 있는 오목대와 전주리베라호텔 객실이라면 가능할 듯 하다. 대로변의 ㅌㅜㅁㅗㄹㅗㅇㅜ라는 카페에서 전경을 볼 수 있긴 하나, 높이가 충분하지 않다. 이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관광지 답지 않게 쓴맛이 풍부한 맛있는 커피인데, 가격이 5천원이다. 카페는 손님이 많다.

 

한옥마을에서 오목교를 건너면 산중에 있는, 집집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자만마을도 볼 맛이 날 것 같다.

 

8월의 전북은 찌는 듯이 덥다. 올라오는 내내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티셔츠가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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