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6 흐림 비
이탈리아 친퀘테레 마나롤라
마나롤라Manarola
베르나차 역으로 돌아왔다. 마나롤라행 기차를 탔어야했는데 반대방향으로 가서 몬테로소에 도착했다. 베르나차와는 달리 약간 번화한 동네같이 보였다. 다시 반대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와서 마나롤라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석양이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다. 바다 끝에서 붉은 점이 방사형으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두운 남색 바다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붉은 점은 사그라들어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었다. 바다가 육지였다면 사막 끝에 도시가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밤중 미국 서부 고속도로를 달리다 하늘까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물들인 라스베가스의 모습과 비슷했다. 신비로움은 그때보다 더했다. 갈수만 있다면 그 붉은 점까지 가보고 싶었다. 배를 타고 가다 본다면 더 황홀할 것이다. 하지만 마나롤라역에서 본 일몰도 충분히 황홀했다.
1530 쯤 되어서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바로 언덕을 타기 시작했다. 마나롤라의 절경은 석양때이다. 석양의 마나롤라를 관람하는 가장 좋은 자리는 옆마을 코르닐리아에서 마나롤라 오는 트레킹코스 한중간에 있으나, 거기까지 갈 시간은 없었다.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포도밭 둑방길이었고, 가로등은 없었다. 포도밭 중간중간에 나팔부는 천사 모양 등의 하얀색 판넬들이 수십개 세워져있었다. 숨이 가쁘게 언덕 중턱에 다다르자, 예수님과 교회 모양의 판넬이 세워져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멘! 이 나왔다. 뒤를 돌아보자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내려가는 길은 더 위험해보였다. 아찔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간간히 길에서 벗어나 포도밭으로 들어갔는데, 갈때마다 여기서 구르면 농담 아니라 2-3주 후에 발견될 것 같았다. 두발과 두손을 다써서 기어오다시피 해서 내려왔다. 마을에 당도하니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언덕을 올라갔던 일이 꿈처럼 느껴지면서 소름이 끼쳤다. 방파제 부두로 가보니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었다. 가로등이 있는 곳은 하얗게 부서지는 거친 파도의 포말 때문에, 가로등이 없는 곳은 새까만 암흑 속에서 몰아치는 소리 때문에 공포감이 극대화 되었다. 등대가 있는 언덕에 갔더니 정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땅에 서있는 것인지 바다에 서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지중해 깊은 심해, 심연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들리는 소리는 파도소리와 물결소리뿐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조그만 마을의 광대한 공포와 끝을 알수 없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2000 경 피렌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는데, 직행이 없어서 피사 경유를 탔다. 피사 첸트랄레 Pisa Centrale 역에서 갈아탔어야 했는데, 첸트랄레 가기 직전 역에서 헷갈려서 우왕좌왕 했다. 다행히 나와 비슷해보이는 중국 남자애가 알아봐서 내리지 않았다. 첸트랄레 역에 내려서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길래 뛰어서 급하게 기차를 갈아타고 민박집에 오니 2300 가 거의 다 되어있었다. 우리방에 새로 들어온 자매 두명과 이야기를 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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