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9 비 흐림
이탈리아 베네치아
뮤제오 코레르Museo Correr
합판 벤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광장은 비가 오기 때문에 벤치가 없었으나, 두칼레궁전 처마 밑에 딱 한켠 차려져있었다. 자리도 딱 한자리 남아있었다. 마치 나를 위한 자리처럼. 비도 질퍽질퍽 거리고 바닷바람도 써늘한 날씨였지만, 옳다쿠나 하고 앉아있다 보니 졸았다. 졸다 보니, 회랑 안쪽에 보니 벽면에 붙어있는 벤치가 보였다. 안쪽으로 가면 덜 추울거야, 하는 생각에 들어갔지만 덜 춥진 않았다. 그냥 등을 기댈데가 생겼을뿐. 좀 있다보니 왠 커플이 와서 앉았다. 말투를 들어보니 동유럽쪽에서 온 것 같은데, 가방에서 빵쪼가리와 사과를 꺼내서 나눠먹는다. 그런데 커플놈들이 바지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탁탁 털고 가자마자, 비둘기들이 진격의 거인떼들처럼 몰려왔다. 십수마리의 비둘기가 건물 턱을 점프해서 올라오고 먼데 앉아있던 비둘기들이 이쪽 벤치 방향으로 돌진하는데 나는 진짜 질겁했다. 자칫하다가는 비둘기한테 내 발을 밟힐것 같았다. 빌어먹을 커플놈들 하면서 도망갔다.
도망가면서 생각했다. 아 맞다, 두칼레 궁전 표가 남아있었지. 두칼레 궁전 말고도 박물관 4개인가를 더 볼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자. 그래서 전시주제가 가장 매력적이던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으로 들어갔다. 맞았다. 두칼레 궁전 표는 궁전 뿐만 아니라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박물관 4개를 다 볼 수 있는 표였다. 내가 3시간동안 산마르코 광장에서 떨고 도망다닌 것은 헛짓거리였다. 따뜻한 박물관 안에서 화장실도 쓸수 있었던 것이다.
코레르 박물관은 1830년부터 테오도로 코레르Teodoro Correr 라는 베네치아 토박이 귀족가문의 사람이 생전에 모았던 보물들을 그의 사후에 가문에서 기증한 것이다.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나, 각 방에 들어가면 입이 떡벌어질만큼 아름다운 장식과 치장들이 눈길을 끈다. 코레르 박물관과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가 이어져 있어서 같이 관람할수 있다.
돌아다닐 힘이 남아있지 않아 커피나 먹으려는 생각으로 박물관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는데, 옆을 보니 샌드위치도 있어서 같이 시켰다. 왜 그렇게 살면 후회한다는 걸 꼭 지나봐야 아는 것일까. 샌드위치의 프로슈토는 원산지의 풍미를 한껏 풍기면서 누린내와 쉰내를 여과없이 분출하고 있었다. 살라미도 가끔은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프로슈토는 인생의 고난 같은 느낌이었다. 창피하지만 프로슈토는 빼놓고 빵과 야채만 먹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프로슈토의 냄새가 배어서 다 못먹었다. 이런 식사를 하는데 10.1유로가 들었다. 샌드위치 하나와 라떼마끼아토 한잔에 10유로!!
페니체 극장 송년음악회Teatro la Fenice
1640 드디어 페니체 극장 입성. 페니체 극장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 비해 규모나, 실력면에서 한수 아래라고 한다. 그렇지만 몇백년을 이어온 음악예술에 대한 전통과 연륜이 어디 가랴. 극장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면 입장시켜준다. 층마다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고, 옷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박스석은 보통 관람객이 도착하기 전에 잠궈놓는다. 스튜어디스한테 표를 보여주면 문을 열어준다. 박스석은 4인 1실이며, 의자가 앞열 2, 뒷열 2 좌석씩 있다. 앞열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열이 관람하기 힘드니까, 앞열 사람들이 벽에 붙어준다. 3층 박스석은 165 유로. 예매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했다. 새해의 기운이 느껴지도록 베토벤 7번 교향곡으로 시작하고, 림스키 코르사코프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치니의 토스카와 베르디 라트라비아타 등을 연주했다. 송년음악회라 그런지 흥겨운 곡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자리가 멀었는지, 테너 성량이 약했는지 소프라노는 안그랬는데 악기소리에 파묻혔다. 송년음악회라 그랬는지 캐쥬얼한 것 같았다. 의상은 물론 주로 정장이었지만, 소프라노, 테너랑 관람객들이랑 농담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소프라노가 빨간 드레스 입고 나와서 사람들이 칭찬했나보다. 장난으로 뽐내는 척하고 가슴 추켜올리고 그랬다. 그리고 지휘자가 키가 굉장히 작았는데, 소프라노 데리고 나오고 들어갈때 종종거리면서 쫓아갔다. 한번은 그렇게 쫓아가다가 소프라노 치마 밟아서 사람들이 웃어제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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