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선생님의 방귀소리

네다 2014. 3. 12. 17:20
728x90

 

1.

나는 대한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공부는 지겹지만 다양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 덕분에 왁자지껄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어떤 일 때문에 좀 기분이 좋지 않다. 얼마전 다솜이가 교사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녹음해 왔다면서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있는데서 들려주었다. 푸드덕푸드덕. 아마도 대변 보는 소리인 것 같았다. 무슨 기분 나쁘게 이런걸 녹음해왔나 봤더니 우리반 담임 이은영 선생님이 일을 보실때 녹음한 것이었다. 반 학생으로서 약점을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닐테고 그냥 단순히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한 것 같은데 그걸 또 다른 애들한테 들려줄 것 까지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똥싸고 방귀뀌기 마련인데. 게다가 지우지도 않고 몇날며칠 계속 틀더니, 급기야는 종례시간에 그걸 틀어버렸다. 선생님께서는 자기 아니라고도 해보시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셨지만, 아무래도 속으로는 당황하셨을 것임이 틀림없다. 더 착잡한 것은 종선이, 중영이, 동연이까지 나서서 선생님 방귀소리 한번 녹음해보겠다고 난리가 아닌것이다. 애들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까지 되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심하다. 며칠째 계속 그 대변소리때문에 종례시간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우리는 결국 지난번 반장선거에서 왜 집계표가 53표씩이나 나왔는지(우리반 총원은 38명밖에 안되는데 말이다ㅋ), 지난학기 환경미화때 학급비를 잘못 쓴 것 같은데 돈이 어떻게 나간건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아휴 정말 언제쯤 우리반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나.

 

2.

한때(중2병에 시달리던 고등학교때)는 연예부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장래희망이 파파라치였었다. 많이 오래됐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심은하 열기가 식지 않았을때였고, 에스이에스 v. 핑클 전장구도가 활발할때였으며, 근본적으로 우리는 에이치오티 v. 젝스키스 대전의 OB들이었다. 물론 나도 에이치오티 전력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연예인들은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여배우들, 여자 연예인들은 호박씨까는 구린내를 풍기면서, 나같은 서민들을 허상으로 혹세무민하고 있고 생각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들이 민낯으로 슈퍼마켓에 다녀올때, 츄리닝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벅벅 긁으면서 집앞에 쓰레기를 버릴때, 우리에게는 자기는 남자랑 손 한번 안잡아봤다고 안심하라면서 뒤로는 몰래 애인이랑 좋아죽을때, 불시에 달려들어 명백한 증거를 잡아 서민들에게 '너희들이 그렇게 핥고빨던 여배우가 사실은 이런 지저분하고 문란한 사람이었다!' 하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좋아서 연예부 기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을 흠집내고자 연예부 기자가 되고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서민들이 '내가 좋아하는 내가 존경하는 언니오빠누나형이 사실은 저런 사람이었다니! 정말 경멸스럽군! 역시 사람 속은 모르는거야!' 하고 느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2병에 시달리고 있어서라고는 하지만, 내가 참 무섭고 고약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일반인들에게 까발려서 연예인에게는 상처를 주고, 일반인들에게는 실망을 주는 직업을 희망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역할은 좋지 않다. 필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상처주고 끌어내리고 짓밟기 위해서, 밤새고 감시하고 미행하는 직업은 권할만한 직업이 아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직업이 아니다. 능력이 안돼서 못하기도 하지만, 딱히 선망할 직업은 못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국가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혹은 적어도 필요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권력남용과 기득권의 비리를 감시할때 적용되는 말이다. 더 나은 사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는 그것을 숨기려고 안간힘 쓰고 밑에서는 바보천치같이 그런 기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엎어져 있을대 필요한 것이 펜의 힘이다. 사회취약계층을 취업시키면 정부지원금이 나오는지도 모르는 영세기업 운영자들을 위해서, 공무원이 차명 노무법인을 설립해서 등록대행 해주고 뽀찌 떼어먹기 전에, 신문에서 '이런 제도가 있으니 조금 번거롭더라도 빨리빨리 신청해서 돈 타가세요!' 하는 것이 진짜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우리나라 선수가 올림픽에서 하늘이 내려준 연기를 하고도 은메달을 받고있는 판에,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굿이나 보고 떡 나온 술상이나 걷어차자 하고 있는 판에, 별볼일 없는 넷돌이들이 쓸데없이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 가서 입털고 있는 판에, 미리미리 정부에서 어떻게 조치하고 있는지 대한체육회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서 정식제소할 계획인지 데이바이데이로 알려주는 것이 신문의 역할인 것이다. 끌러파는 것이 그렇게 자신있다면 데스크에서 엎든 조인트를 까이든, 지난정권 대규모 토목공사 사업에서 대형건설사들이 얼마나 삥땅치고 돌려먹었는지 땅주인들이 얼마나 벌어먹었는지, 국가 유일의 정보기관이 과연 국민들 모르게 뒷구멍으로 한것들이 뭐가 더 있는지, 자기 신문 40쪽중에 한꼭지라도, 하다못해 자기 블로그에라도 올리는 것이 진짜 글쟁이들이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국어대사전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은어 비속어는 쓰지 말고. 명색이 난다긴다 하는 국립대, 사립대 국문학과 나온 것들이 전국구 공식 발간물에 멘붕이 뭐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들은 뒤를 털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알려주고 싶은 것은 그들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김무생 할아버지는 늙어서 돌아가셨고, 장진영은 암으로 죽었고, 최진실과 장자연과 수많은 입 떡 벌어질 유명 연예인들은 자살했다. 나도 장진영 죽기전에 엄청 싫어했는데, 죽고 나니까 다 부질없더라. 죽은 사람을 어쩔것인가.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연예인들도 돈만 빼면 생로병사를 겪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들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인간적인 활동일정에 노동을 착취당하는 우리 근로자들과 다르지 않다.(물론 돈을 전제로 하면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만, 돈을 배제하고 생각해보자.)

연예인은 공인이니까 이런것들은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법을 잘 지킬 것, 법을 잘 지킬 것, 법을 잘 지킬 것, 타인을 배려할 것, 노인을 공경할 것,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 외국나가서 우리나라 망신시키지 말 것, 얼굴책이나 짹짹이 등에 자기 얼굴에 침뱉는 헛소리 쓰지 말 것 등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기 팬들에게 헛된 희망고문 시킬 것' 따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자들도 연예인들의 꽁냥질 따위를 우리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다. 나만 빼고 남들 다하는 연애, 걔들도 하겠지. 언제 알든 알게 될 연애같은 건 나중에 결혼식 할때나, 혼인신고 하고서나 알아도 상관 없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연예인이 연애한다는 기사를 보면, 왠지 모르게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위장에 똥을 주지마.

더불어 사족으로 걸그룹들이 뭘 입고 나오든, 뭘 안입고 나오든, 뒤가 파졌든, 앞이 파졌든, 거기를 부각시키고 확대해서 사진 찍어줄 필요도 없다. 숨막힐듯한 뒷태든 아찔한 각선미든, 벗겨보면 다 똑같은 사람 몸일텐데 얘랑 쟤랑 굳이 뭐하러 나눠가며 부위별로 사진을 찍어대는지 모르겠다. 도축해서 비닐포장해 놓으면 라벨지 붙이기 전에 횡성한우인지 임실한우인지 누가 구분해.

 

한가지 또 덧붙이자면 연예인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던 고등학교때의 나도 운동선수들은 좋아했다.(내가 김남일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엉엉.) 당시 생각에 운동선수들은 우리한테 가면(연예인의 허상)이 아닌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당연히 경기장 뒤에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만나기도 하겠지, 라는 생각도 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연예인 열애설보다 운동선수 열애설에 더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인데 마치 연예인 사생활 까발리는 것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때문일 것이다.

 

3.

갑자기 엄한 게 생각났다.

요새 걸그룹 뮤비 역겹다. 작년 겨울부터 끝까지 다 본 뮤비가 한편도 없다. 내 비위가 약한편은 아니라서 아갓어보이도 끝까지 봤었는데, 썸씽이랑 풀문 등은 중간에 꺼버렸다. 보기 민망한 것은 아니다. 혼자 보니까 남들 눈치보이는 것도 아니다. 개인취향을 따지자면 오히려 더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가급적 상대가 나오는 것이 좋다. 곰곰히 따져보면 혼자 더듬는 것은 관람자를 불쾌하게 하는 것 같다. 걔들은 맨날 침대에 누워서 자기를 더듬고 있다. 그런 일화가 있지 않은가. 상대를 앞에 두고 혼자서 위하는 사람. 아, 내가 남자라면 좋을수도 있겠다. 양면 문제일 수도 있겠다. 둘이 출현하는 것을 선호하는 관음증 쪽인가, 가상의 나를 세워두고 보여주는 변태쪽이 좋은가.

 

2-1.

어쨌든 결론은 돈 받고 일할거면 좋은일 하라는 것이다. 너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일.(여기는 제로섬사회라서 다같이 좋은 일은 없다는 전근대 산업사회의 논리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