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블루 재스민

네다 2014. 3. 20. 05:43
728x90

 

 

 

블루 재스민Blue Jasmine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케이트 블란쳇, 샐리 호킨스, 알렉 볼드윈, 바비 카나베일

 

천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라서, 배신당하고, 파산하고, 손에 남은 것 하나 없이, 그토록 경멸하던 동생의 집에 얹혀사는 주제이더라도 그대로이다. 아직은, 혹은 끝까지, 자기는 우아한 사람이라서, 우월하게 태어나서 아름답게 죽는 것이 운명이라고 믿는다. 과거를 회상하고 즐거웠던 한때에 여전히 취해있고 지금의 현실은 잠시 꾸는 꿈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사람처럼 기술을 배우고, 불만족스러운 직업을 구하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농락당하면서도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믿는다. 항상 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고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동생은 자신과 전혀 다른 인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도 결국 좋은 남자 만나서 잘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주제에 사실은 자신과 수준이 맞는 남자를 찾는 것이라고 위로한다. 언제쯤 자신이 지나왔던 화려한 과거가 속에만 보석으로 장식해놓고 겉으로는 오물을 뒤집어쓴 터널이란 것을 깨닫게 될 때쯤엔 비참함을 느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기가 먼저 자기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은근히 자스민을 동정하고 응원까지 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이상한 사람이고, 알콜중독자이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손에서 돈과 명예와 사랑이 무참히 빠져나가는 광경을 끝까지 목격했다. 그녀가 혼잣말을 하고 정신없이 군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녀는 인생의 밑바닥을 거쳐온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밑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때문에 그녀에게 동정심이 드는 것이다.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서도 항상 멍청이였고 - 스스로 파산을 불러올 정도로,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도 바보였다. 부유할 때도 뻔뻔했지만 가난해지고서도 뻔뻔할 수 있는 천성 - 비록 정상적인 뻔뻔함은 아니지만 - 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영화는 비록 자스민의 삶이 가식이라고 허황된 삶의 말로는 이렇다고 놀리고, 동생 진저의 삶이 어질러져 있는 난장판이지만 그 와중에도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스민을 응원하고 싶다. 엉망진창의 행복 속에 살고 있는 진저가 얄밉게 보였다고나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자매, 여자 콤비가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좋아한다. 디아워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프로즌 등. 아, 크게 보면 파인딩 네버랜드나 만추도 해당된다. 두 여자 이야기의 큰 맥락은 '여성의 숙명적인 상처에 대한 각성과 그에 대한 상호 치료, 혹은 위로' 쯤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혹은 자체적으로 상처입은 여자가 나온다. 그리고 크고작은 사건들을 거쳐 두 여성 모두 치유 받으면서 끝난다. 관람자로서 나도 치유되는 느낌이다. 사실 그것이 내 삶에 있어 본질적인 치유가 아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날정도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든다. 내 삶으로부터 한걸음 더 물러나게 되고 인생을 더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블루 재스민은 그런 공식을 무참히 깨버렸다. 감독 성향이 원래 그러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럴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다른 갈등구조를 엮어넣는다. 궁극적으로 엔딩에서 쿠크다스 심장을 박살내버린다. 전체 줄거리를 모르고 약간이나마 기대를 갖고 봤는데 마지막에 맥이 풀렸다. 말끔하고 극히 현실적인 엔딩이었지만, 그래서 더 우울해졌다. 역시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년  (0) 2014.03.20
화양연화 (류시화作)  (0) 2014.03.20
공존의 이유  (0) 2014.03.20
목숨  (0) 2014.03.20
그리운 우리  (0)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