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05 uk liverpool

2014.4.5(토) 비 흐림

리버풀

 

진주같은 도시이다. 

맨하탄이나 피카딜리서커스같은 화려함은 없다. 바티칸이나 예루살렘같은 성스러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서울이나 도쿄같은 북적임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같은 항구도시라도 부산이나 인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항구도시 특유의 왁자지껄하고 걸쭉함을 상상했다면 오히려 그 반대라 할만하다. 하지만 시골도 아니다. 영국의 전원마을은 절대 아니다. 수로로 노를 저어 배를 타는 한적한 마을도 아니다. 리버풀은 대도시도 시골마을도 아니다. 굳이 비슷한 류를 따지자면 프랑스 리옹쯤 되겠다. 하지만 리옹을 리버풀에 비견할 수는 없다.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딱 좋은 중견도시이다. 한때는 해운업으로 세계에서 내로라 했고,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치고 올라간 다른 많은 도시들을 빗겨나 뒤로 들어앉은 중년의 도시이다. 800년 역사를 중년으로 볼 것이냐, 노년으로 볼 것이냐 의문스럽지만, 역사와는 무관하게 분위기를 놓고 본다면 중년의 도시이다. 안정된 생활환경과 잘 보존된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살기 좋은 도시이다. 잘 관리된 옛것의 우아함, 생경함, 아름다움. 바로 그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잡고 있는 최신식의 건물. 도시의 첫인상은 중세인데 가끔씩 보이는 현대건물에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부조리가 절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과분하다.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18세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 도시의 계획자들과 관리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항구를 걷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행복해짐을 느낀다. 정말 대단한 도시이다,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도시이다.

잘 보존되고 관리된 도시는 얼마나 가치있는가. 리버풀박물관 3층에서 바라본 리버풀포트Port of Liverpool 는 감탄을 자아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격언을 다시 상기시킨다. 어쩌면 조상들이 우리보다 덜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시간의 문제였을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경복궁 전경이 내려다보인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곳에서는 옛건물을 허물지 않고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도시를 빠짐없이 훑고 지나가는 편리한 대중교통. 큰 굴곡이 별로 없는 완만한 지형. 걷기에 절대 불편함 없는 격자형 도시구조. 방사형 도시보다는 격자형 도시가 좋다. 중심부는 왠지 피하게 되고 주변부에 뭔가 재밌는것이 없나 들여다보는 성격에는.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유쾌한 상점들과 시원시원한 거리. 최근에 생긴 시내중심가의 쇼핑몰은 굳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한층 더 편리하게 해줄 것이다. 길다랗게 펼쳐진 항만도로는 걷기, 자전거타기 모든 것에 적합하다. 평범한 생활인을 위한 좋은 배려이다.

프리미어 상위권의 두 축구클럽, 리버풀 Liverpool FC 과 에버튼 Everton FC.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한팀을 응원하게 되어 있는 것이 숙명이다. 그래도 수만개 되는 영국 축구리그에서 최상위권 두팀중 하나를 지정받게 되니 복이라면 복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풀에서 태어난 것은 복福이라고 할 것이다.

1920년의 한국상황을 묻길래, 일제강점기라고 했다. 부끄럽지 않았다. 과거의 사실이고 우리는 그것것을 초월하는 눈부신 혹은 눈물겨운 역사를 가졌으니까. 우리는 경공업부터 시작해서 중화학건설까지 발전시켰고 그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영국이 수백년에 걸쳐 달성한 역사를 우리는 몇십년동안 이루어냈다. indensed history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 맞다. You Will Never Walk Alone.

리버풀FC 왕좌 복귀를 경하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