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05 맑음
스웨덴 스톡홀름, 래트빅
스톡홀름 - 래트빅 - 달할라콘서트Dalhalla - 래트빅
60크로나에 아침부페가 있다는 말을 듣고 0800에 기상했으나 아침은 찾아볼수 없다. 어쩌면 차려져 있었으나 형편 없어서 못보고 지나친 것일수도 있다. 0900에 체크아웃 하겠으니 짐을 좀 맡아달라고 했더니 30크로나를 달란다. 이 동네는 이런 시시한 것도 다 돈이다. 주민들은 시급 많이 받아서 좋겠지만 여행자들은 이런 시시한 돈 쓰는 것도 아까운데 기분 상하게 한다. 기차역에서는 90크로나란다. 이럴거면 그냥 침대 안치우고 나갔다가 10시에 다시 돌아올걸 그랬다. 멋쩍어서 그냥 안맡기겠다고 하고서 짐을 들고 나와보니 짐은 무겁고 아침 먹을데는 마땅찮고 착잡했다. 계획부실의 결과이다.
좀 걷다보니 세븐일레븐이 보여서 아싸하고 들어갔다. 모든 비싼것중에 뭘먹을까 고민하다가 샌드위치와 슬러시를 합쳐서 35크로나라고 하길래 얼씨구나 하고 샀는데, 샌드위치는 손바닥만한 호밀빵에 햄치즈 들어있었고 슬러시는 한 100미리정도 될까 하는 수준이었다. 스톡홀름의 수준이다. 신기하게도 둘다 맛은 엄청 좋았다. 시티컨퍼런스센터City Conference Centre가 있는 공원에서 먹었다. 다 먹고 난후 훙스홀멘Hungsholmen에 있는 경찰청Polishuset 쪽으로 이동했다. 주말이고 경찰청이 오픈하지는 않으나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밀레니엄 삼부작 때문인가. 가는길에 라드후셋Radhuset을 보았는데 구시청사 같다. 경찰청을 보고 쿵스홀름스교회Kungsholms kyrka를 지나 중앙역으로 왔다.
래트빅Raettvik 가는 기차가 1145에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프레스비론Pressbyraon에서 샌드위치, 과자와 탄산수를 사는데 89크로나가 들었다. 인터시티Intercity는 최신식 기차는 아니었다. 팔걸이와 등받이 윗부분이 나무로 되어있고 좌석은 거친 천으로 되어있었는데 좌석이 굉장히 넓어서 엄청 편했다. 스웨덴 사람들 덩치가 크다보니 옛날 기차라도 좌석이 큰것 같았다. 책을 좀 읽다가 보니 뒷자리에 부부가 오는 바람에 그 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내 옆자리로 옮겼다. 말 한번 걸어보자 하는 찰나 남학생이 피식 웃었다. 뭔가 했더니 이어폰으로 무슨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방해할 수 없어서 그냥 계속 책만 읽었다.
중간에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비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햄, 치즈, 양상추, 방울토마토(신기하게 통으로 들어있었다) 뿐이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스웨덴 물가가 비싼 것은 사실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영국에서는 만원을 주고 탄내 나는 BLT를 먹을 수 있는데, 스웨덴은 신선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절대적 물가는 비싸지만 상대적 가성비는 좋을 수 있다. 샌드위치를 먹고 탄산수를 여는데 탄산이 빠져나오느라 터져버렸다. 난감했다. 조금 있으니 말라서 다행이었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이어폰을 빼길래 말을 걸어보려고 혹시 모라Mora까지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단칼에 no 라고 답한다. 어휴. 남학생은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버렸다. 1511 도착이라고 했는데 1500부터 계속 조마조마 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안내방송에 영어가 안 나오는 듯 시원찮다. 래트빅이 큰 도시가 아닌데다가 모라까지 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래트빅에서 맞춰 내렸다. 처음에 Utgaong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아직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출구라는 뜻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래트빅이 딱 있어서 내렸다.
숙소 윗비고르덴호스텔Utbygaorden Hostel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는데 버스가 없다. 안내센터에 물어봤더니 5분전에 출발했단다. 다음 버스는 1705에나 있단다. 그걸 타면 1825에 달할라Dalhalla 가는 셔틀버스를 못탄다. 택시가 있냐고 물었더니 콜을 불러야 한단다. 내 전화기는 지금 액정이 박살나서 수리를 맡겨야했다. 혹시 전화를 쓸수 있냐고 물었더니 센터에는 전화가 없단다. 자기 전화를 빌려주고 싶지만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다. 하긴 생판 초면인 여행객이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하겠지.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면 택시를 잡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운이 좋으면 잡을 수 있을 거란다. 택시도 다니지 않는 동네였다. 택시도 잡히지 않고, 잡힌다 해도 기본 100-200 크로나를 내야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호스텔 들르는 것은 포기하고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호숫가에서 시간을 때웠다. 기차역에서 1825에 달할라 가는 셔틀버스(175크로나)가 있기 때문에 그걸 타면 공연은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기차역에 붙어있는 매점에서 탄산수(20크로나), 아이스크림(21크로나), 껌(12크로나)를 사먹었다. 로카Loka 탄산수가 맛있었다.
사진 좀 찍다 책 좀 읽다 하는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서양인들은 햇볕나면 잔디밭에 누워서 즐긴다는데 동양인들은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고 그냥 서양인 구경이나 하면 재밌다. 얼핏 본 호수는 엄청 맑았는데 바닥이 붉은 색이라서 특이한 외행성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책을 좀 읽다가 버스시간이 되어 매점에서 다시 탄산수(20크로나)와 토블론초콜렛(13유로)을 사서 버스에 탔다. 버스를 타고 한 10분쯤 가니 공연장에 도착했다. 역시 북유럽은 명실상부 겨우 10분에 175크로나가 든다.
공연장에 도착해서 보니 과연 장관이었다. 석회암산업이 남긴 파인 채석장 바닥에 스테이지와 계단식 관객석을 만들고 관객석 뒤로 페스티벌을 위한 음식가판대를 세웠다. 공연스테이지 주변으로는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물고기는 살지 않지만 수영을 할 수 있을정도로 깨끗한 물이다. 실제로 수영하는 사람은 없다.(내가 갔을때는 1명이 수영하고 있었는데 재미로 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관객들은 채석장 꼭대기부터 60m 밑바닥까지 난 등성이 길을 따라내려가면서 무성한 바위와 돌을 구경한다. 가로 180m 세로 400m로 최대 4천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구멍이다. 거대한 자연의 웅장함과 날것 그대로의 거침이 묵직하게 반긴다. 산이 하늘을 향해서 목구멍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가판대에서 달걀초코케익(20크로나)와 머핀(20크로나)을 사먹고 사진을 좀 찍으며 놀았다. 매점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다들 담요, 방석, 잠바를 갖고 왔다. 어느 노부부에게 좌석을 예약하지 않고 매점 주변에서 공연을 보면 공짜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공연 시작하면 다들 내려갈 거란다. 좌석으로 내려와서 조금 기다리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콘서트 체스Concert Chess 공연으로서 뮤지컬 체스에 나오는 곡들을 부르지만 연기는 하지않고 그냥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만 부르는 식이다. 노래는 대부분 영어로 했지만 나레이션을 스웨덴어로 해서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 다만 플롯은 영국 오리지널버전이 아니라 미국 브로드웨이버전에서 따온 것 같았다. 등장 가수는 미국 체스선수 프레디 트럼퍼Freddie Trumper, 러시아 체스선수 아나톨리 세르기에브스키Anatoli Sergievski, 아나톨리의 조력자 몰로코프Molokov, 미녀 플로렌스Florence, 그리고 아나톨리의 부인 스베틀라나Svetlana였다. 프레디는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불렀고, 아나톨리는 성악과 민요가 합쳐진 톤, 몰로코프는 팝송톤, 플로렌스는 성악과 팝페라를 넘나들었고, 스베틀라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처럼 불렀다. 아나톨리가 한창 헝가리풍의 노래를 헝가리 전통춤까지 곁들여 부르고나서 숨이 차서 다음 대사를 못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프레디의 솔로도 놀랄만큼 뛰어났고 플로렌스도 우아하게 불렀다. 각 멤버별로 듀엣도 좋았다. 그 외에도 한 넘버가 끝날때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며 호응해주었다. 가수들도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고, 관객들도 매우 즐거워했다. 정장 입고 온 사람은 하나도 없고, 가족단위로 간식과 담요를 싸오거나 나같이 캠핑 짐까지 들고온 사람도 있었다. 격식을 따지는 엄격한 공연이 아니라 야외콘서트같은 분위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한 한여름밤의 꿈 같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나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채석장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마치 피난 가거나 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는 행렬처럼 보였다. 앞으로 가려야 갈수도 없고 엉금엉금 그저 사람들이 가는 속도에 맞춰 발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래트빅역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각은 약 1230. 숙소까지는 5km 정도 되어보였다. 걸을 수 있을까. 걷기 시작하다가 인도가 끝나는 것처럼 보여서 포기했다. 핸드폰이 안되니 택시도 잡을 수 없고, 근처에서 호텔을 찾거나 노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둘러보니 하룻밤에 500크로나 하는 호텔이 있었는데 벌써 불이 꺼져있었다. 다른 호텔에서 나오는 노부부에게 혹시 리셉션에 누가 있냐고 물었으나 아무도 없단다.
왜 그렇게 먼 곳에 숙소를 잡았을까. 돈이 좀 들더라도 역 근처에 잡는 것이 차라리 더 절약하는 방법이었을텐데. 래트빅에 처음 도착해서 숙소에 가지도 못했고. 너무 어려운 일정을 짰다. 반드시 렌트를 했어야 했다. 이런 곳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다들 차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정이 지났지만 그다지 어둡지 않았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차역 벤치에 좀 앉아있다가 과연 새벽을 견딜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일어났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펍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혹시 택시를 잡게 전화를 쓸수 없냐고 물었다. 가게에는 전화가 없고 기차역에 가면 아마 택시가 좀 있을거라고 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눈하나 깜짝 안하고 가게에 전화가 없다는 말을 한다. 하는 수없이 그냥 다시 기차역으로 갔는데 택시승강장에 정말 거짓말처럼 택시가 서있었다. 알바생이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예수님을 외쳤다.
택시를 타고 10분 덜걸려 호스텔에 도착하니 1300경이었고 택시비로 167크로나가 나왔다. 바가지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적게 나온 금액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호스텔 정문이 잠겨있고 불도 꺼져있는 것 같았다. 문에는 초인종도 없었다. 나는 사람을 찾아 호스텔 건물을 뒤지며 한바퀴 돌았다. 그런데 잘보니 문 옆 벤치에 내 이름이 적힌 종이 속에 열쇠가 들어있었다. 건물 약도와 숙박비 정산, 내일 아침에 대한 설명도 빼곡히 적혀있었다.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사람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방에 올라와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지 못한채 세수와 양치만 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석양도 실컷 봤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눕자마자 잠들었다.
래트빅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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