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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스트리아> 140806 독일 뉘른베르크 - 도쿠젠트룸

네다 2014. 9. 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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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6 맑음

뉘른베르크

 

0835 프라하 - 1214 뉘른베르크

신기하게 프라하-뉘른베르크 구간은 도이치반DB에서 운영하는 2층 고속버스가 다닌다. 우리 고속버스터미널처럼 터미널을 찾으면 안되고, 프라하 중앙역 바깥쪽 도로에 시내버스 정류장처럼 생긴 곳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대충 끼여서 같이 기다리면 된다. 버스가 오면 기사양반에게 표를 보여드리고 캐리어를 싣고 차에 타면 된다. 나는 운이 좋게 2층 두번째 창가 자리에 혼자 앉게 되었다. 가는길이 스펙터클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층에서 너른풍경을 구경하면서 가는게 재미있다. 

 

다행히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에 버스를 놓치지 않고 잘 탔다. 한번 뼈아픈 경험을 하면 당분간은 긴장하며 다니는 법이다. 하지만 길을 못찾는 것은 아무리 뼈아픈 경험을 해도 개선되지 않는 불치병인 것 같다. 분명히 구글맵으로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10분 내로 걸릴 것을 보고 갔는데, 중앙역에 내려서 또 길을 잘못 찾아 1시간이나 걸려서 호스텔에 도착했다. 심지어 어느 방향으로 가서 그렇게 된지도 모르겠다. 기차역을 등지고 바로 왼쪽으로 꺾어지면 되는데 정면으로 한참 걸어간 것 같다. 캐리어 바퀴도 다 닳아져서 창피하게 소리도 시끄러운데 웬 공원까지 들어갔다. 못살겠다.

 

그래도 어쨌든 1300에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체크인은 1500 이후), 도쿠젠트룸Dokuzentrum으로 향했다. 중간에 여행자인포센터에서 도쿠젠트룸 가는 길을 묻고, 일일권(5.2유로)을 끊었다. 트램 도쿠젠트룸 정류장에서 내리면 김무스의 무스발린 앞머리처럼 3층 복도가 통으로 멋들어지게 들린 도쿠젠트룸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으로 들어가서 2층까지 관람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구조이다. 사람이 많이 붐비지는 않으나, 미국 등에서 단체관광객이 오는 것 같다.

 

나치 기록물들로 박물관를 만들었는데 입장료로 5유로를 받는다. 인원제한하려는건지 애교인지 모르겠다. 설마 나치기록물들로 돈벌려는 것은 아니겠지. '총통의 도시' 뉘른베르크답게 나치에 관한 사소하고도 꽤 오래된 기록물들도 꼼꼼히 복원해서 전시해놨다. 애초에 독일인이 나치당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히틀러가 무력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각 도시와 지역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중간중간 영상기록물을 상영하면서 관람객을 당시 현장으로 데려가서 그때 그 느낌을 재현해주는데, 소름 돋는다. 박물관 뒤쪽으로 거창한 계획만큼 적극적으로 방치된 나치전당대회장 폐허가 그대로 남아있다. 히틀러는 애초에 이 장소를 로마 콜로세움에 비견되는 U자형 대회장으로 계획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대회장에서 사람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웅성웅성댈 때쯤 뒤쪽 너른 두첸트타이히호수Dutzendteich를 배경으로 총통이 상승하면 모든 조명이 그를 비추면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어둠속의 한줄기 빛, 나아가 독일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비치기를 염원했을 것이다.황제나 왕들이 할법한, 그것도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이들처럼, 영웅놀이를 꿈꾸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미친인간이다. 박정희가 경제는 잘했지만 민주주의는 못했다는 식의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이 인간은 그냥 미친 인간이다. 없었어야할 인간이다. 유대인 학살이나 세계대전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가난과 불균형이라는 극한상황을 무기로 한 나라의 그  많은 국민들을 그렇게 역사의 죄인이 되게 만들었는지, 영리한 두뇌와 타고난 성실성을 한순간의 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사건을 저지르게 만들었는지, 미궁에 빠지게 만든다. 아무 쓸모도 없이 허무하게 남은 전당대회장터를 보면 할말을 잃는다. 세계최고의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철학적이고 사유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건장하고 영리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미개한 군중심리가 창조한 지옥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은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갈 계획은 없지만, 히틀러의 광기, 그리고 당대 독일사람들이 빠져들었던 파멸의 지옥은 도쿠젠트룸만 보아도 너무도 잘 느껴져서 치를 떨게 만든다.

 

1430 제발두스교회St Sebalduskirche, 마리엔교회Marienkirche, 로렌츠교회St Lorenzkirche를 차례로 갔는데 마지막 로렌츠교회에서 1500에 마감하고 미사본다고 사진 못찍게 했다. 3개 중에 로렌츠 교회가 제일 볼거 많았는데 말이다. 로렌츠부터 봤어야 했다. 로렌츠교회 앞에는 상가도 많고 재래시장이 열려서 가판대에서 음식도 팔고 여러 청과물도 판다. 특히 여기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장님이 하시는 초밥가판대가 있고 거기에 '김밥'이라고 써있어서 김밥(5.5유로)을 사먹었는데 단무지가 들어있어서 신기했다. 어떻게 구하신 것일까.

 

애초에 뉘른베르크를 찾은 이유인 뒤러의 흔적을 보기 위해 뒤러 생가에 갔는데, 시간을 넘겨서 관람을 할 수 없었다. 꼬인 일정이 많은 뉘른베르크이다. 다음에 다시 오든지 해야겠다.

뒤러는 독일을 비롯해 북유럽 르네상스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볼 수 있다. A.D.라는 현대식 브랜드 엠블럼같은 서명으로 나타낸 자신감과는 대조적으로 실제성격은 끊임없이 현세와 내세, 신성에 대해 고민하는 우울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성격은 차치하고 실력만큼이나 업적도 화려한데, 수채화, 유채화를 넘어, 추종불허의 판화 기술은 물론 뉘른베르크 미술대표 자격으로 외부회의에도 참석한 경력이 있다. 목판화, 동판화 경계를 넘나들며 남긴, '참회하는 성 히에로니무스', '성녀 베로니카', '기사, 죽음과 악마' 등의 작품은 유럽 판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22세때 약혼자에게 바친 자화상에서는 남자의 정조를 나타내는 엉겅퀴꽃을 든 청순한 청년의 모습으로(심지어 이 그림에서도 쇄골을 숨기지 않는다), 29세때 그린 자화상에서는 모피를 입고 정면(관람자)을 직시하는 당당하고 위엄있는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미남을 넘어, 성격만 받쳐주었다면 플레이보이 기질이 농후할 것 같은 예감이다.



City Hostel Nuremberg

Klaragasse 12, 90402 Nuremberg / +4991180192146
http://www.city-hostel-nuernberg.de/

도쿠젠트룸Dokumentationszentrum Reichsparteitagsgelande (나치 기록물 전시관) 및 나치전당대회장National Party Rally Ground
Bayernstrasse 110, 90478 Nuremberg / +499112317538 / 트램 9호선 Dokuzentrum 정류장
http://www.museen.nuernberg.de/dokuzentrum/

뒤러하우스Albrecht Durer Haus
Albrecht Durer Strasse 39, 90403 Nuremberg / +499112312568 / 
버스 36번 Rathaus에서 내려서 20분정도 걸어가는 길밖에 못찾음. 제발두스교회 오른쪽 길을 타고 언덕을 올라가면 카이저부르그Kaiserburg 바로 앞 3층건물임.
http://www.museen.nuernberg.de/duererh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