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국선변호사, 외모 언급, 여성, 성 범죄

네다 2016. 6. 1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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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관에게 국선변호를 맡겨야 한다. 재판정에서는 전관예우를 신경 안 쓸 수 없으니 심각하게 검토를 할 것이다.

전관은 딱히 승률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니 변호 방향을 고민할 것이다. 진짜 억울한 피고만 살려주겠지.


2.

외모에 관련된 언급을 아예 실례로 취급해야 한다. 지금도 '애비없는 자식' '또라이' 이런 말을 직접 하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듯이.

'왜 이렇게 날씬해졌냐' '몰라보게 예뻐졌다' '살 찐 것 같은데' 라는 묘사조차도 실례로 받아들이게 인식을 바꿔야 한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배경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하듯이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3.

여성은 수동적 존재, 대상적 존재, 제2의 성이라는 말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강하게 혹은 약하게 억압받았다.

상대적으로 자유를 누릴 때도 있었고, 여권이 신장될 때도 있었고, 저해될 때도 있었다.

즉, 남성 혹은 남권에 비교했을 때만이 여성과 여권의 의의가 생겨났던 것이다. 남성이 기준점이었다.

남성이 없이는 여성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비교될 가치도 없었다. 

여성은 철저하게 비교의 대상으로서 존재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었던 것이다.


4.

미디어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남성은 시각자극에 따라 심하게 흥분된다는 해석, 흥분할 때는 자제심을 쉽게 잃는다는 분석을 내지 않아야 한다.

시각자극은 다른 후각 청각자극과 마찬가지로 감각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다소 하지만, 그것이 자제심을 잃을 정도의 자극이 되지는 않는다.

된장찌개의 냄새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 식당에 들어가 강제로 된장찌개를 뺏어 먹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이성이란 항상 감정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성 범죄의 원인은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자극이 아니라, 반응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합리화 때문이다.

그래도 된다는 미디어에의 노출과 암묵적인 주입 때문에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있는 선택의 역할이 왜소해져 버렸다.

안되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

맥도날드, 피자헛, 스타벅스 등 전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던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각 지역 음식들보다 확실히 맛있다. 적어도 편차가 큰 지역 음식들 맛에 비해 고른 맛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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