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피엔스Sapiens

네다 2016. 8.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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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노아 하라리Yuyal Noah Harari / 조현욱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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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제국의 정치질서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이나 셋으로는 충분치 않다. 20이나 30이면 충분히 많다. 제국이라 불리기 위한 조건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용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시킬 수 있다. 오늘날 영국은 국경이 분명하며, 스스로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는 국경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다. 1세기 전에는 지구상의 거의 어떤 지역이라도 대영제국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다. 강조할 점은,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 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서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제국이 반드시 군사적 정복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다. 아테네 제국은 자발적 동맹으로 생명을 얻었으며, 합스부르크 제국은 혼인으로 탄생해 일련의 영리한 결혼동맹에 의해 꿰맞춰졌다. 제국은 또 반드시 독재적 황제가 통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대영제국의 통치체제는 민주주의였다.다른 민주적(혹은 적어도 공화정인) 제국으로는 근현대의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미국이 있다. 근대 이전의 노브고로드, 로마, 카르타고, 아테네도 여기에 속한다.

크기 역시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국은 왜소할 수도 있다. 아테네 제국은 최전성기에도 크기와 인구가 오늘날의 그리스보다 작았다. 아즈텍 제국은 오늘날의 멕시코보다 작았다. 두 국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었지만, 현대 그리스와 멕시코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통치조직을 점차 복속시킨 데 반해, 후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원래 독립된 도시국가 1백여 곳을 지배했으며, 아즈텍 제국은 과세 기록이 사실이라면 371개의 부족과 해당부족민을 다스렸다.


356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현대 과학은 라틴어로 표현하면 '이그노라무스ignoramus-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론도 신성하지 않으며 도전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다.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 차지.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들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새 힘의 획득. 현대 과학은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론을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하며, 특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357

고대의 전통지식은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첫째,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그가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묻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를 새로 발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예컨대 13세기 영국 요크셔 지방 마을에 사는 농부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면, 그는 기독교 전통속에 명확한 답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가 할 일은 동네 사제에게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둘째, 하나의 전통 전체가 뭔가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위대한 신들이나 과거의 현자들이 우리에게 애써 말해주지 않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정의상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가령 아까 그 요크셔 농부가 거미가 어떻게 거미줄을 치는지 알고 싶었다면, 사제에게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기독교 문헌 어디에도 이에 대한 답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것이 기독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하진 않았다. 오히려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든 하느님은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만일 이 정보가 인간의 번영과 구원에 핵심이 되는 것이었다면, 하느님은 당연히 성경에 상세히 설명해 놓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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