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소주클럽

네다 2017. 1. 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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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클럽The Soju Club

팀피츠Tim Fitts / 정미현

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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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미드필더로 뛰어서 마음대로 슛을 쏠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득점하는 선수였다. 형이 들려준 비결은 자기 주변의 모든 선수들이 공을 차고 뛰어다니게 해주라는 거였다.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동안 형도 뛰어다니며 공을 차되 그 패턴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 위치나 공의 궤적, 조준점 같은 걸 계산하는게 아니라 그 순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터지기 직전, 바로 그 순간에 공이 발에 다가오면 그저공을 골대 안으로 안내해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형이 예전에 무심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잠깐이라도 결정에 대해, 규칙에 대해, 플레이에 대해 생각한다면 정신이 에너지의 흐름을 놓치고 길을 잃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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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그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무의식중에 나를 바보라 불러서 문제라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훨씬 더 심한 말로 나를 불렀다. 정작 문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이나 생활에 대해 내가 알고 싶어하거나 호기심을 갖거나 어떤 욕망, 최소한 잠재의식적으로 갖는 욕망을 내비치면 전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내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어부가 되는 길을 택했더라도 내 직감대로라면 아마 아버지는 내가 형편없는 어부가 되길 빌었을 테고 그래야 자기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일인자로 남아 있을거라 여겼지 싶다. 위대한 어부는 그저 업적만으로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의 꿈은, 상태가 엉망인 샘플 하나를 곁에 두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과 그 열등 모델을 비교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아버지는 단순히 답을 몰랐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형이 축구를 할 때 보여준 달인의 기교가 아버지한테도 있었나 보다. 뭔지 모르겠지만 직관적으로 딱 아는 그런 것. 아버지는 고기들이 왜 거기 있는지, 전에는 왜 거기 없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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