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s und Goldmund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배수아
그책
283
"로베르트, 자네가 건축 전문 목수는 아니지만 가구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나. 여기 우리가 살게 될 성에 칸막이벽을 세워주게. 방이 두 개 필요하니 말이야. 하나는 나와 레네의 방, 다른 하나는 자네와 암염소의 방이지. 이젠 먹을 것도 거의 남지 않았어. 오늘 저녁은 많든 적든 그냥 염소젖으로 만족해야지. 이제 벽을 만들게나. 나와 레네는 우리 셋이 누울 잠자리 준비를 할 테니. 내일은 내가 식량을 구하러 나가보겠네."
309
가장 참담한 현상은 이런 지옥의 재앙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울 속죄양을 찾느라 다들 혈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이 역병을 불러온 악랄한 원흉인지 알고 있다고 저마다 주장하는 형국이었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악한 자들이 페스트로 죽은 시신에서 페스트 독을 뽑아내 담벼락과 문고리에 바르고 우물과 가축을 오염시켜 죽음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의심의 대상이 되면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누가 몰래 살짝 귀띔해주어 미리 달아나지 못하면 마을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든 아니면 폭도들에게 맞아 죽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유대인이나 외국인 혹은 의사들이 원흉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골드문트는 어느 도시에서 집들이 밀집한 유대인 구역 전체가 불길에 휨싸인 참상을 목격하고 가슴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비명을 지르며 불구덩이에서 도망쳐 나온 이들을 무기로 위협하여 다시 불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공포와 적개심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죄 없는 자들을 때려죽이고 태워 죽이고 고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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