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플로리다

네다 2020. 10. 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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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Florida

로런 그로프Lauren Groff / 정연희

문학동네

 

41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

이제 가자, 아버지가 말했다. 주드는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갔다. 픽업트럭을 타고 두 시간을 달린 뒤에야 주드는 지금 그들이 함께 뱀을 잡으러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 어렸을 때는 따라가겠다고 졸랐지만, 아버지는 번번이 안 된다고,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었다. 주드가 독과 총이 가득하고 알 수 없는 배선 장치가 되어 있는 집에 어린아이를 혼자 일주일 동안 방치하는 것도 똑같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며 맞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

 

49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

집에서 처음으로 아기를 안아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여태 이 울긋불긋한 살덩이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만큼 겁먹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의도 없이도, 그는 얼마나 쉽게 이 아이를 부숴버릴 수 있는가. 아이가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서 쪼개질 수도 있었다. 그가 목욕을 시키다가 아이가 폐렴에 걸릴 수도 있었다. 화가 난 그가 끔찍한 말을 해서 아기가 쪼그라들 수도 있었다.

 

93 미드나이트 존

그래서 나는 아들들과 여기 남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미쳤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차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그렇게 무능한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그것은 핵심을 찌른 말이었는데, 우리 문제의 근본 원이이 그가 그런 여자와 결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에 몇 년씩 내 관심을 끄는 것만 잘했다. 내 관심사는 책과 아이들뿐이었기에, 삶의 나머지 부분은 얼마간 멀어져 있었다. 내 아이들, 인류 문화가 길러지고 있는 두 배양접시가 무한히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성의 구분으로 떠맡겨진 듯한 것은 뭐든 모욕으로 느껴졌기에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나는 옷을 사주지도 않을 것이고, 저녁을 만들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일과를 관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부모들끼리 아이들의 놀이 약속을 잡는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나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 아이들에게 로켓을 쏘아올리는 법이나 영광의 순간을 위해 수영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자기 점심은 자기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아이들을 안아주겠지만, 그것은 그저 인간으로서 하는 행위였다.

 

297 이포르

세상에 테러리스트들이 득시글한 것은 사실이다. 어머니인 그녀가 더이상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레스토랑에 가면 늘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살펴둔다. 더 심해지고 더 나빠진 채,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국부 공격의 형태로, 공중 전자 감시 장치의 형태로, 아름다웠던 알레포는 폭격 후 처참히 파괴되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멀직이 밀어놓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녀는 침대에서 온종일을 보낼 것이다.

 

306 이포르

길게 늘어앉은 갈매기들 한복판에 왜소하고 약한 갈매기 한 마리가 있다. 옆에 앉은 새들 사이에서 힘겹게 어깨를 밀친다. 너무 말라서 다른 새들처럼 편안히 있을 수가 없다.

새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처음에, 왜소한 새 왼쪽에 앉은 갈매기가 떨고 있는 그 새 쪽으로 절을 하는 동작을 할 때, 이어 오른쪽에 있는 또 한 마리가 같은 동작을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두 마리 새 모두 자꾸 절을 한다. 어쩌면 작은 새가 왕자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영문을 모른 채 그렇게 생각한다. 이어, 가까이 있던 다른 갈매기들이 그리로 이동해 같이 절을 하고, 그제야 그녀는 그것이 절이 아니라 그 마르고 왜소한 갈매기를 죽이는 행위라는 걸 깨닫는다. 쪼아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모든 일이 침묵 속에서 일어났다. 비록 그녀의 내부에서 올라온 고음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가득 채우긴 했지만, 작은 갈매기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담담히 받아들였다. 자신을 다른 새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듯 보였다. 당연히, 적어도 비명을 지를 권리는 있었다. 결과는 피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저항을 하는 호사는 누려볼 수 있었다.

 

381 이포르

그녀는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지만,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저녁을 먹고 있는 이 테이블 중 어디로든 의자를 가져가 정치건 돈이건 신이건, 어른들의 화제라면 무엇이든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혀를 생각을 말하는 데 쓰고 싶다. 살아있는 마음에 고독은 위험한 것이다. 주위에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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