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네다 2021. 2. 2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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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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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맹자는 묵자에게 서늘하게 대답한다. "귀신(귀와 신)은 없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군자는 반드시 제사와 예를 공부해야 한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귀신이 없다는 주장도 황당한데, 귀신이 정녕 없다면 제사나 예식은 도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묵자는 대꾸한다. "귀신이 없다면서 제사와 예를 공부하는 것, 이것은 손님이 없는데 손님 맞는 예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물고기가 없는데 그물을 만드는 것과 같다."

자식이 고시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추운 겨울에도 매일 새벽에 치성을 드리러 가거나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그래도 새벽기도는 계속하는 게 좋을 거에요. 신이야 있든 없든."..."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고, 또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다 보면 아침 운동도 되고, 그렇게 규칙적으로 살다보면 건강하게 되고, 부모가 건강하며 자식이 부모 걱정 할 일도 없어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공부에 전념하다 보면, 고시에 붙게 되고, 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신은 없지만 새벽기도는 계속하세요."

공맹자도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한 거다. 사람들은 신에게 뭔가 얻기 위해 기도하고 전례를 행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지만 예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예를 통해서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라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신의 존재를 인정해서 그에게 원하는 바를 갈구하는 입장이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나머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 강력한 존재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면, 탄원의 대상으로든 원망의 대상으로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로서 바로 옆에 모시게 되낟.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외아들마저 잃게 되자, 십자가를 내동댕이치고 하느님을 원망했으며,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게 저주스러웠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렇게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어서 다행그럽기도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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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국가는 자주 실패한다. 대규모 반란군을 진압한 국가는 종종 마이클 콜레오네처럼 개폼을 잡지만, 피지배층은 미시적인 저항을 통해 결국 국가를 곤경에 빠뜨린다. 정치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의 연구에 따르면, 피지배층은 지연 전술, 은근한 의무 불이행, 좀도둑질,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공유지 무단 점유, 험담, 경멸적 침묵 등 각종 미시적 수단을 통해 국가에 저항한다. 국가가 실패하는 것은 꼭 조직화된 대규모 투쟁이나 영웅적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미시적인 투쟁 속에서, 국가 권력은 잠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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