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

네다 2008. 8. 2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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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독일 외교관이 본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각축전
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

막스 폰 브란트 지음|김종수 옮김|살림|448쪽|2만3000원
 
막스 폰 브란트(1835~1920)는 19세기 독일외교관으로 활동한 동아시아 전문가이다. 이 책은 그가 1897년 독일에서 출간한 《19세기 동아시아 문제―독일 외교관의 눈에 비친 중국, 일본, 조선》을 옮긴 것이다.

브란트는 1872년부터 일본 주재 독일 변리공사로 일했고, 1875년부터 1893년까지 청나라 주재 공사를 지냈다. 1882~1883년엔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전체 15장으로 된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명성황후에 대해 그는 동정적이다. "민비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사내대장부'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는 시아버지 대원군의 영향력을 완전히 일소시켰으며, 대음모가였던 시아버지의 격렬한 증오를 한 몸에 받았다. 민비는 정치적으로 청나라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매우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를 위한 치밀한 준비과정과 가담자들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내용까지 활용하면서 진상에 접근한다. 먼저 흥선대원군의 집권과정,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 일본의 표리부동을 세밀히 짚어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일본인은 겉으로는 지금까지 유럽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하면서도 아시아의 다른 민족들에게 유럽 문화의 담지자와 전달자 역할을 하기엔 얼마나 부적합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청일전쟁 강화조약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李鴻章)에 대한 인물평도 흥미롭다. 이토에 대해서는 '일본 전역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는 세평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홍장은 '흥미롭고 대단히 중요하며 정감이 가는 인물'로 기억한다.

이 책의 가치는 19세기 말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주역이면서도 비교적 냉정한 관찰자로서 중국, 일본, 조선과 베트남, 인도, 시암을 둘러싸고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서구 열강의 각축전과 각국 내부 문제를 논리 정연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