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도샘, 전 서울대 학생도 아니고 당신 수업을 듣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부르는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돈, 명예, 성공을 바라보면 달려가는 젊음이 아니라, 기쁨, 슬픔, 아픔, 인생을 온전히 느끼는 젊음을 살라는 당신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그런데 란도샘, 왜 새천년 젊은이들은 7,80년대 젊은이들과 다른지, 왜 그때 대학생들만큼 성숙하지 못한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물론 고민해보셨겠지요.
전 대학 4년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학 6년을 궁핍에 대한 헤어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제가 객관적으로 궁핍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집은 생활보호 대상 가정도 아니고, 제가 직업이 없더라도 저희 집이 못먹고 못입는 것도 아니고, 제가 만약 백수라면 어머니께 얹혀살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끊임없이 궁핍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졸업하고 취직을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지만,
지금 잘못받은 학점이 나의 후일 인생에 있어서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내가 지금 사소하게 잘못한 행동이 나중에 나의 삶을 망치지는 않을까,
내가 지금 배우지 않은 스킬 때문에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살다간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시간을 허무하게 보낼 수도, 사고를 칠 수도, 아픈 경험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 시간의 여유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미래의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임을 알기에 한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인생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궁핍해질 것만 같은, 실체도 없이 헤어나올 수 없는 두려움에 6년을 떨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깨알같은 노력으로 보내고도 저는 지금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았어야 했는데, 더 활발한 교외활동을 했어야 했는데.
물론 반대의 후회도 합니다. 더 많이 미팅 소개팅 헌팅 부킹을 했어햐 했는데. 더 많이 놀고 더 까졌어야 했는데. 캠퍼스에서 첫눈에 반한 그에게 고백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저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할 때 무슨 조언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동아리에 열심히 참여해라, 봉사해라, 악기 연주를 배워라, 남자를 사귀어라, 클럽에 가라, 연애 하라.
란도샘,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할 수 있는한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라고 조언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그들은 또 모든 것을 경험하고 사회에 나와서 후회할 것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었다고.
68년 이후 사회에 허무와 회의라는 개념이 허락되기 시작된 이후, 대학생들에게 사유와 철학의 시간이 허용되었던 것과 반대로,
IMF와 IMF를 이겨내고 성공을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우리 대학생들에게 그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허락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나쁘거나 부도덕해서가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정신과 물질 사이의 우열을 구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사회가 너무 잘 나가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더 나은 환경에 살게 하고자 만든 어르신들의 노력때문에 젊은이들이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저만치 앞서나가고, 매일매일 신기술이 발명되고, 더 살기 좋아지고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잘난 사회 앞에 지쳤습니다. 기쁨과 슬픔, 아픔과 애절함을 느끼면 뭐합니까. 대한민국과 사회는 여전히 잘 나가는데.
고상한 말투로, 인생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 내면을 가꾸는 데에서부터 기쁨이 시작된다. 고 설명하신다면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란도샘, 잘 나가는 사회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게 위로해주실 방법이 있으십니까.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남스타일과 한국 음악 (0) | 2012.11.28 |
---|---|
대선을 앞두고 (0) | 2012.11.13 |
안철수 원장 시류에 편승하여 (0) | 2011.09.05 |
값지기_대결.txt (0) | 2011.09.05 |
야구 (0) | 2010.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