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투수가 강판되면서 화를 냈다.
한명은 락커를 부숴서 새끼손가락이 부숴졌고,
한명은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그런데도 팬들은 더 빨리 내리지 않은 감독을 탓한다.
하지만 감독은 잘했다. 아니 오히려 못했다.
그 투수들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더 세워두어야 했다.
보다 인간적인 경기를 위해서. 선수들에게 보다 인간적인 경기를 위해서.
두 투수들은 '투수의 제국'에서 나왔다. 8개구단중 공시적이자 통시적으로 가장 강한 선발진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다른 팀의 선발들과는 실력의 차원을 달리 한다.
퀄리티 스타트의 개념은 7이닝 1-2실점이고, 완투는 기본, 완봉은 기분에 따라서 해줘야 하는 투수의 제국이다.
두 투수들은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무지막지했다.
경기를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끝까지 내가 지배하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어차피 내가 책임을 질거니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영웅이 되어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드는 것도, 역적이 되어 고개를 숙이는 것도 어차피 내가 할테니까.
감독은 그들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그냥 두어야 했다.
많은 팬들과 팀에게는 이기고 지고가 중요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기든 지든 사랑스러운 팀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자디잔 톱니바퀴들로 혹은 그 속의 나사들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가 매정하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선수가, 한 명의 남자가, 남을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시간을 이기고, 경기를 이기고, 운명을 이기는 장면이다.
볼넷을 남발하고 주자를 쌓아두고 체력이 바닥나더라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기 일은 자기가 처리하는 모습이다.
자기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할때까지 자유롭게 자기의 체력과 정신력을 고갈시키며 경기의 지배권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우리 팀이 이런 야구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무리 늙고 힘에 부쳐도 또 한개의 안타를 치고 싶어한다면 기꺼이 그에게 우익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팀.
키작고 볼품없는 선수라서 다들 절대 뜬공은 못잡을 거라고 말하더라도 믿고 중견수를 맡길 수 있는 팀.
이런 기용이 스토리를 만들고 영웅을 만들고 팀에 대한 애정을 만드는 것 아닐까.
'이기는 야구가 재미있는 야구다'라는 진리와 유행처럼 번지는 전술야구가 야구세계도 관료제화 시키는 것 같아서 두렵다.
아무나 데려다 놓아도 정상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료제. 내 이름과 내 색깔이 없어지는 관료제.
두 투수들이 강판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야구가 좀 더 인간미 있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한계를 이겨내는 선수와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야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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