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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31224 이탈리아 로마 - 대전차 경기장

네다 2014. 1. 2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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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4 맑음
이탈리아 로마 
유로자전거나라 로마버스투어

 

로마시내와 근교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를 신청했다. 소매치기도 무섭고, 날도 춥고 하여 대중교통을 별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고, 로마시내에 대한 정보는 많이 찾아보지 않아서 그냥 가이드님 설명과 함께 관람하고 싶었다. 오늘 일정은 다음과 같다.  

콜로세움 > 대전차 경기장 > 진실의 입 > 포로로마노 > 캄피돌리오 광장과 언덕 > 판테온 > 나보나 광장 > 카타콤베 > 수도교 아쿠아 클라우디아 > 사도바울 참수성지와 트레폰타나 성당 > 트레비분수 > 스페인계단(성삼위일체 성당)

  
대전차 경기장 Circus Maximus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었던 로마 최대의 전차경기장이자 대규모 집단 오락시설이다. 로마에서 최초로 건설된 전차경기장이며 역사상 가장 큰 운동경기장으로 꼽힌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라틴어로 '대형 경기장(또는 광장)'이라는 뜻이다. 본래 로마의 에트루리아 왕들이 경기와 오락을 위해 건설하였으며 목재로만 지었다. BC 50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약 2만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다시 건설했다. 당시 로마 주민의 1/4 이상이 들어올 수 있어서 매우 인기가 높은 장소였다. 그 후 더욱 확장되어 약 27만 명을 수용할 정도까지 커졌다. 한번은 경기를 관람하다 너무 큰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나머지 2층 객석이 무너져서 1만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549년에 마지막 전차경기가 벌어졌다.

 

원래 스스로 운동을 즐겨하는 그리스에서는 40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1바퀴를 뛰는 경기를 즐겨하였으나, 로마에서는 12명의 프로기수들이 4두마차를 끌고 7바퀴를 달리는 경기가 인기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환점에는 청동동상 7마리가 있어, 한바퀴 돌때마다 랩타임 1개씩을 표시해주었다. 선수들은 초반에는 엉켜있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다가 중앙분리대 부분부터 주로 속력을 내었으며, 반환점을 도는 순간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면 튕겨나가 경기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았다.

 

영화에서처럼 검을 들고 달리면서 상대선수를 해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대전차 경기는 오늘날 경마와 같아서 마권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승패는 매우 결정적인 것이었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않은 선수는 관람객들의 분노를 피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말에서 떨어지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엉킨 끈을 자를수 있도록 단도는 허용되었다. 단검을 든 사람을 이르는 말 글래디에이터는 투기경기장에서나 볼수 있었다.

 

전차의 조종사Aurigae는 보통 노예나 하층민이었다. 그리스와는 달리 여성도 남자들과 함께 이 경주를 관람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 직접 와서 경주를 구경하는 평민들과 달리 황제나 귀족들은 경기장에 오지 않아도 되었는데, 경기장이 가장 잘보이는 팔라티노 언덕이 그들의 별장지였기 때문이다. 별장 저택 도무스를 짓고 자신의 발코니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장은 U자형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세 면에 좌석이 있고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전차경기뿐 아니라 축제, 공연 등이 열렸다.

 

현재는 이전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경기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에서 콘서트나 대형 집회, 축구 응원 같은 행사가 열린다. 로마 평지는 원래 사람이 살수 없었다. 테베레강의 불규칙적인 잦은 범람으로 홍수피해는 물론 말라리아가 극심했던 것이다. 에트루리아 타르키니아누스 왕이 최초로 수도시설을 도입해서 물을 빼지 못했더라면 대규모 평지 경기장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때문에, 로마가 멸망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없어지면서 전차경기장은 다시 범람 퇴적물이 쌓이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발굴하고 있는 상태이다.

 

진실의 입  Vocca Della Verita

아무도 찾지 않고 있는지도 몰랐던 돌덩이에서 <로마의 휴일>로 일약 스타가 된 조각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하고 놀던중, 진실의 입에 손을 넣었다가 진짜로 손이 잘린 것처럼 장난을 해서 오드리 헵번이 깜놀하는 장면이 있다.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오드리 헵번에게 알리지 않은채 진짜로 그레고리 펙이 정말로 손이 잘린 것처럼 연기를 했다고 한다.

산타마리아인코스메딘 성당 벽에 붙어 있다. 기원전 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원래의 용도는 밝혀진바 없다. 로마시대에는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는데,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돌 자체가 1톤이나 되기 때문에, 여러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또 돌 자체가 수입산 대리석으로 추정되는데, 하수도 뚜껑을 만들기 위해 돌을 수입하는 것은 당치 않다. 하수도 뚜껑이라면 물이 들어가는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돌 전체의 크기에 비해 구멍이 너무 작다. 얼굴 자체가 강의 신을 닮은 것으로 보아 어떤 분수나 건물 장식의 일부가 아닐까 추정된다. 중세 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사람을 심문할 때 심문 받는 사람의 손을 입 안에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릴 것을 서약하게 한 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오랜 기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겨우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_-^ 커플 꺼져.





산타마리아인코스메딘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 로마에 있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바실리카 식 성당. 고대건축이 있었던 장소에, 일부는 그 건축재료를 재이용하여서 세웠으며 시기는 4세기 이전, 혹은 6세기라고 하는 설이 엇갈린다.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 Hadrianus I 시대에 확대되고 측랑側廊 을 만들었다. 다시 11~12세기에 복원, 종탑을 부가하였으나 내부는 8세기형을 그대로 보존한다. 이곳에는 발렌타인 성인 St. Valentinus 의 유해가 있다. 발렌타인 데이의 기원이 된 성인이시다. 솔로들의 공적ㅎㄷㄷ 서기 3세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원정에 징집된 병사들이 출병 직전 결혼을 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결혼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안타까워한 발렌타인 신부는 이들 사이의 결혼을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섰다가 사형을 당했다. 발렌타인데이는 원정하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에 반대한 사제 발렌타인이 처형된 270년 2월 1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또 2월 둘째 주부터 새들이 짝짓기를 시작한다고 믿는 서양의 속설이 결합한 풍습이기도 하다. 한편, 로마가톨릭에서는 이날이 성인 발렌티누스와 직접적 관련은 없으며, 이교도의 축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가 당시 로마인들이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형제를 기려 매년 2월 15일에 기념하던 루퍼칼리아 축전을 금지하고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 선포하였는데, 이로부터 1969년 로마가톨릭의 성인력이 개정되고 발렌티누스가 성인 명단에서 제외되기 전까지 축일로 지정되었다. 이후로도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날을 발렌티누스의 축일로 지켜오고 있다. 예전에는 발렌타인데이에 부모와 자녀가 사랑과 감사를 적은 카드를 교환하던 풍습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고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 되었다. 초콜릿 선물 풍습은 일본 초콜릿 제조회사의 상업적 농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발렌티누스찡 모독하지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