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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31223 이탈리아 로마 -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네다 2014. 1. 22.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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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맑음
바티칸
유로자전거나라 바티칸투어 

성베드로 대성당 Basilica di San Pietro

바티칸 미술관 관람이 다 끝나면 드디어 베드로 대성당에 입실한다. 성당부터 보고 미술관으로 갈수도 있지만, 미술관 줄을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아침 일찍 미술관을 보고 성당을 오는편이 나은것 같다. 베드로 대성당은 처음부터 끝가지 압도의 연속이다. 크기와 높이에 한번 압도되고, 모작이 아닌 진품 예술작품들에 둘러쌓여 있다는 사실에 압도되고,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의 능력이 도대체 어느정도인가 생각하다가 압도된다. 베드로 대성당의 그림들은 모자이크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은 자유이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공식적으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큰 로마기독교 교회당이다. 이는 교황청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면을 향하게 된다. 피에타 조각상이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23세때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도 온화함과 인자함을 잃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마리아의 얼굴에서 슬픔을 지웠다. 성모 마리아가 나이 들어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하여,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다'고 답한다.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보다는 잠자는 듯한 평온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지상에서 보는 모습은 진실이 아니고, 공중에서 봐야만 진실을 알수 있다. 사람들에게 과시하게 위해 마리아의 가슴띠에 '피렌체출신 미켈란젤로작'이라고 조각해 넣었던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망쳤다고 두고두고 후회하며, 이후 작품들에 절대 서명을 넣지 않는다. 실제 인체보다 약간 크게 작업된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조각은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옷을 털며 살아 움직일 듯 하다. 고귀하고 정결한 동정녀의 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모습이 교묘하게 대비를 이루면서도 슬픔을 극복한 안온한 분위기에서 서로 어우러지게 해놓았다. 바티칸 시국에 오는 이유가 피에타상을 보기 위해서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피에타상은 카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강력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유혹되고 멀리서 보면 그리워지는 작품인 것 같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무슨 표정이든 무릎과 발등에 이미 매료되었다. 1972년 라슬로 토트의 반달리즘 만행으로 인해 관람객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한 조치는 오히려 그 가치를 더 높이고 있는 것 같다. 피에타는 죽을때까지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였으며,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에는 팔순의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상이 있다. 스물셋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혈기왕성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밀함과 정확함을 지녔다면, 팔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인생을 관조하는 심오하고 때로는 노쇠한 원숙미가 느껴진다. 

 

왼쪽 통로를 걸어올라가면 오른쪽에 성 베드로의 청동상이 있다. 피렌체 베키오 궁전의 건축 책임자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것으로 피에타와 함께 이 성당의 명물로 통한다. 발가락에 입을 맞추면 죄를 용서받고 복을 얻는다는 전설로 인해 오른쪽 발이 다 닳았을 정도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더불어 또 하나의 명물로 평가받는 1633년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교황 제단의 천개Baldacchino가 있다. 역시 최고의 걸작으로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천개는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제작 당시에는 과다한 청동의 사용, 특히 판테온 천장에서 청동을 떼어오는 무지막지한 행태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성 베드로의 의자는 1666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제작한 작품이자 하이 바로크 예술의 축도이다.

 

성당 동쪽 면은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으로 다소 딱딱하고 엄숙하지만 중앙 발코니에서 교황이 강론과 축복을 내리는 배경으로는 잘 어울린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베드로 광장은 바티칸을 로마로부터 분리하는 국경인 동시에 광장을 에워싼 열주로 천국의 문을 책임진다는 베드로의 '열쇠' 의미를 담는다. 1590년 교황 식스투스 5세 Sixtus V 때 쟈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는 성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완공한다. 돔의 상투 부분에는 2미터 크기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TV ES PETRVS ET SU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VM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you my church.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Vulate, Matthew 16:18-19)

너는 베드로, 내가 너를 반석으로 삼아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내가 너에게 천국의 문을 열수 있는 열쇠를 줄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16:18-19)


아래쪽에는 준공년도가 새겨져 있다.

S. PETRI GLORIAE SIXTVS PP. V.A.M.D. XC. PONTIF.V.

To the glory of St Peter, Sixtus V, pope, in the year of 1590 and the fifth year of his pontificate

성베드로 성인의 영광을 위하여, 교황 식스투스 5세, 1590년, 취임 5년

 

 

 

성당 쿠폴라


성베드로 대성당 관람이 끝나고 희망자들을 성당 쿠폴라에 올라가보는 시간을 가진다. 쿠폴라까지는 계단으로 약 5백계단 이상 올라가야 한다. 1층부터 5층까지 라고 한다면, 걸어서 5층까지 다 가는 것은 5유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가는 것은 7유로이다. 3층에 내려서도 협소한 계단으로 꽤 올라가야 하는 거리이니,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추천한다. 3천원은 한국에서 커피값이다.

좁고 기울어진(말그대로 똑바로 서있을 수가 없다. 쿠폴라 안쪽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신체가 오른쪽으로 구부정하게 기울어진다.) 계단을 타고 숨가쁘게 올라가다가 성당 옥상이 나타나면 상쾌함과 기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평선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붉은 지붕과 녹지의 향연에 명확한 열쇠모양의 마당이 콕 찍혀 있는 장관은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한다. 물론 옥상은 좁고, 한사람 다닐정도의 복도밖에 안되는데, 사람들은 바글바글 하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늦게 올라왔으니 베드로 광장 한번 구경하라고 1루석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는다. 어쩔수 없이 어글리코리안이 되어야 한다. 인간벽을 뚫고 겨우겨우 잘보이는 자리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

 

 

 

 

 

 

 

 

 

베르니니가 판테온의 청동을 뜯어다 만든 발다키노.

 

 

 

화려함의 극치인 발다키노.

 

 

 

 

 

 

 

 

 

 

 

 

성 베드로 좌상의 오른발이 반질반질하다.

 

 

 

 

 

 

 

 

 

 

 

 

 

 

 

 

유리문으로 막혀있는 피에타. 멀리서봐도 섬세한 피부와 옷감 묘사가 놀랍다.

 

 

 

 

하나의 조각작품이 된 성수반.

 

 

 

 

 

 

 

 

 

 

 

 

  

웅장하고 담대한 궁륭.

 

 

 

쿠폴라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벽이 심하게 기울어져 옆을 집고 지나가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