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그런 날

네다 2014. 3. 22. 21:18
728x90

 

 

그런 날

남진우

 

그런 날

하루 종일 바람은 불고

마음은 천장 구석의 얼룩을 따라 한없이 번져가고 싶은 오후

뒷문 덜컹이는 소리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오고

 

느지막이 몸 일으켜 창문을 열면

가로수와 전깃줄 사이를 헤매는 눈송이가 보이고

두터운 옷 뒤집어쓴 사람들 느릿느릿 거리를 지나쳐 가고

 

하염없이 시간은 흐르고

아무도 내게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는 그런 날

옆집 옥상의 언 빨래들 문득 펄럭이다 그칠 때

창밖을 휘날리는 눈발 속을 걸어오는

하얀 눈사람이 보이고

 

어느덧 방 안에 들어온 눈사람이

눈웃음 지으며 다가오고 창밖 하늘에 부서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저물녘

방을 가득 채운 채 하얗게 웃고 있는 눈사람 앞에서

나 또한 멀거니 웃고만 있는 그런 날

 

오래고 오랜 나날 먼 길을 굴러오며 커다래진 눈사람도

차츰 녹아가고

내 발밑을 적시며 흐르는 눈사람의 물 앞에서

나 아무리 도리질해보지만

 

나도 어느 날 길 떠나

어느 누구 앞에 눈사람 되어 서고 싶은 그런 날

뒷문 덜컹이는 소리에 종일토록 마음은 붐비고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재(不在)  (0) 2014.03.22
  (0) 2014.03.22
점성술이 없는 밤  (0) 2014.03.22
  (0) 2014.03.22
딸아 미안하다  (0)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