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네다 2014. 3. 2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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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아침에도 그가 사는 집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그 사람

묵은 그림처럼 익숙하게 그 자리에 있는 거기,

 

오래 된 책들이 먼지 캐캐히 꽂혀 있고

겨울이면 난로가 있을 자리에

여름이면 어딘가에서 꺾어온 꽃뭉치가

콜라병이나 사이다병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거기,

 

왔어?

하고 끙 하고 일어나는 그의 손끝엔

시집 한 권이 그와 같이 잠 깨는 듯

그제야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거나

나도 내 집인냥 별 대꾸 안하고 실퉁하니

내 살림 뒤지듯 익숙하게 물컵 찾아

믹스 커피 따위 타 먹을 수 있는 거기,

 

비라도 올라치면

길가에 지렁이 기어 나오듯

꾸역꾸역 한 명씩

익숙한 병들을 앓는 시 나부랭이의 족속들이 모여들고

거기 목늘어난 티 조각이나 쓰레빠 끌고 다니던,

약간 허술하고 친근한 친구들이 묻어 오기도 하고

무슨 그렇게 남자 여자가 어딨어, 그냥 다 같이

같은 별에서 왔거니, 같이 유배 당하고 있거니

그런 비슷비슷한 엄살들 한 꾸러미씩 계란 꾸러미 챙기듯

챙겨서 모여들 수 있는 거기,

 

기왕이면 근처에 텃밭도 있어서

간단한 점심 식사나 저녁 술 안주 근사하게 마련이 되고

먹고 살 걱정 그다지 일삼아 할 생각없는

검소한 살림의 친구가 있어서

그냥 거기 내가 가면 낮이든 밤이든

숨어 들기 좋은 집 하나 있으면 좋을 거기,

 

나는 아무 때나 그 사람에게 건들건들 가서는

아무 때나 서러울 때나

아무 때나 외로울 때나

아무 때나 화가 날 때

거기 가서 조목조목 분풀이 고자질 다 하고 오거나

아니면 별 말 없이 한참을

너덜너덜 해 진 만화책이랑 같이 뒹굴다가

잠경해서 비칠거리며 나오고 싶은 거기,

 

세상 시끄럽든지 말든지

너나 나나 밥에 목 매달고 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머리 한 군데 영광스럽게 빈 곳이 있어서

너나 나나 밥 대신 한 가지쯤은 슬쩍 바꿔 넣고 살 수도 있는

거기,

 

그런 어느 날, 소풍처럼

종일 네 밭에 놀러가

텃밭 매다 돌아와도 좋을 거기,

 

거기....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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