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경희
아침에도 그가 사는 집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그 사람
묵은 그림처럼 익숙하게 그 자리에 있는 거기,
오래 된 책들이 먼지 캐캐히 꽂혀 있고
겨울이면 난로가 있을 자리에
여름이면 어딘가에서 꺾어온 꽃뭉치가
콜라병이나 사이다병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거기,
왔어?
하고 끙 하고 일어나는 그의 손끝엔
시집 한 권이 그와 같이 잠 깨는 듯
그제야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거나
나도 내 집인냥 별 대꾸 안하고 실퉁하니
내 살림 뒤지듯 익숙하게 물컵 찾아
믹스 커피 따위 타 먹을 수 있는 거기,
비라도 올라치면
길가에 지렁이 기어 나오듯
꾸역꾸역 한 명씩
익숙한 병들을 앓는 시 나부랭이의 족속들이 모여들고
거기 목늘어난 티 조각이나 쓰레빠 끌고 다니던,
약간 허술하고 친근한 친구들이 묻어 오기도 하고
무슨 그렇게 남자 여자가 어딨어, 그냥 다 같이
같은 별에서 왔거니, 같이 유배 당하고 있거니
그런 비슷비슷한 엄살들 한 꾸러미씩 계란 꾸러미 챙기듯
챙겨서 모여들 수 있는 거기,
기왕이면 근처에 텃밭도 있어서
간단한 점심 식사나 저녁 술 안주 근사하게 마련이 되고
먹고 살 걱정 그다지 일삼아 할 생각없는
검소한 살림의 친구가 있어서
그냥 거기 내가 가면 낮이든 밤이든
숨어 들기 좋은 집 하나 있으면 좋을 거기,
나는 아무 때나 그 사람에게 건들건들 가서는
아무 때나 서러울 때나
아무 때나 외로울 때나
아무 때나 화가 날 때
거기 가서 조목조목 분풀이 고자질 다 하고 오거나
아니면 별 말 없이 한참을
너덜너덜 해 진 만화책이랑 같이 뒹굴다가
잠경해서 비칠거리며 나오고 싶은 거기,
세상 시끄럽든지 말든지
너나 나나 밥에 목 매달고 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머리 한 군데 영광스럽게 빈 곳이 있어서
너나 나나 밥 대신 한 가지쯤은 슬쩍 바꿔 넣고 살 수도 있는
거기,
그런 어느 날, 소풍처럼
종일 네 밭에 놀러가
텃밭 매다 돌아와도 좋을 거기,
거기....
그런....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