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선민의식, 나가사키, 동양과 서양

네다 2015. 2. 8. 09:18
728x90

1. 아니라고 아니라고. 너희는 선택받는 민족이 아니라고. 지구상에 선택받은 민족은 없다고.

 

선민의식Elitism을 가진 민족은 국가를 세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이스라엘을 부정하고, 히틀러의 독일을, 황제의 일본을 부정하는 이유이다. 자신들만 선택받았다고, 자신들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여럿이 뭉치면 남한테 피해를 끼친다. 어쭙잖은 신화와 중2병이나 가질만한 '잠재적 힘, 내력'이 결합되면 팔레스타인과 우리나라같은 피해자가 속출한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땅을, 부를, 신성함을, 순수함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약속된 운명이란 것은 없다. 세상 모든 민족 혹은 인종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잘살기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있다. 게중에 몇몇은 시기를 잘 만나 흥할 수도 있고, 뒤이어 망할수도 있다. 어떤 누구도 자신이 원래 위대한 운명을 타고 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이를 착취하거나 살해할 권리는 없다.

 

여러 국적의 친구들이 대화하다보면 Yeah, You are an American. Why not? You are a French. 하고 농담하고 놀수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그 나라들이 절대 자신들을 특별하게,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애국자는 국뽕으로 놀림받는다. 진짜 국뽕이 아니라 정상인이라면 국뽕이라는 농담을 재미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지도자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린치를 당하는 일은 없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Normal State인 것이다. 희화화 하는 농담에 대해 웃으면서 받아칠 수 있는 나라 말이다. Great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한 이유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가능해도 '위대한 대한민국'은 불편하다. 우리는 위대하지 않다. 우리는 수백개 국가들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한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좀더 성실하고 근면하고, 잘 살 수 있지만 결코 그것이 우리가 선택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시戰時에 시류에 잘 편승했기 때문이지 하느님이 그들에게 드디어 약속한 땅을 허락해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민의식은 결코 순수하게 종교적 혹은 민족적 바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것이 확실하다. 선민의식을 고취하는 지배계층은 국민을 동원하여 국가적 혹은 정치적 이득을 모색하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집단이다. 모든 국가들이 경제번영을 위하여 애국심을 고취하지만 이들 지배계층은 선민의식이라는 극단적 심리를 동원하여 부자연스러운 이득을 획득하기 위해 애쓴다. 히틀러의 독일이 개혁정부의 일본이 비정상적인 발전을 꿈꾸고 전쟁을 시작했던 이유이다. 국가를 오염시키는 행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선민의식은 자국은 물론 타국까지 오염시키는 종교이다.

 

 

2. 일본 나가사키

 

1988.12.7 일왕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나가사키 공산당 지부는 나가사키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Motoshima Hitoshi에게 질의했다. "황제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있는가?" 모토시마는 대답했다. "나는 황제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1988.12.8 나가사키 시의회와 자민당(모토시마 소속당) 지부는 나가사키에게 그 발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1988.12.12 모토시마 시장은 "양심을 속일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대신 그는 발언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 자민당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그의 사임은 반려되었다. 대신 그는 제명되었고, 자민당과의 향후 협조도 거부되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나는 황제가 전적으로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일본정치의 현상황은 이상하다. 황제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모두 감정문제로 치우쳐버린다. 발언의 자유는 시간과 장소를 상관하지 않고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공감하지 않는 의견이라 해도 존중해야 한다."

1988.12.19 극우단체 회원 24명이 30대의 확성기트럭을 타고 나가사키 시내를 돌면서 모토시마의 자결, '신성한 포기'를 외쳤다. 자민당은 모토시마에 대한 도지사의 지원을 끊을 것을 지시했다. 도지사는 승낙했다.

1988.12.21 극우단체 회원 62명이 82대의 확성기트럭을 타고 나가사키 시내를 돌면서 모토시마의 자결을 외쳤다.

1988.12.24 '나가사키 자유발언 시민연대'가 주도한 모토시마 시장의 발언을 지지하는 13,684명의 서명이 시청에 게재되었다. 단 2주만의 모집이었다. 나가사키 지역의 신사를 비롯해 우익진영으로부터 시장의 탄핵이 요구되었다.

1989.1.7 일왕이 죽었다.

1989.1.18 모토시마 시장은 저격당했다. 다행히 총알이 폐를 뚫고 지나가면서 가까스로 살았다. (모토시마 시장은 2014년 사망하였다.)

 

나가사키는 17세기부터 기독교 선교사와 네덜란드 상인들의 교류가 활발하여 일본에서도 가장 개방된 도시중 하나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받고 순교했지만 여전히 뿌리깊은 기독교 문화가 살아있다. 모토시마 시장의 조부는 기독교인으로 압슬형을 받고 순교했다. 아마도 그는 예수냐, 황제냐 둘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모토시마 시장은 애초에 자민당 소속으로 과거 행적들을 보면 확실한 보수이다. 그의 고백을 보수진보의 틀에서 해석하기도 어렵다. 그의 고백은 일본전통문화와 상반되는 기독교의 고해Confess문화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저격당한 모토시마 시장에게도 우익은 예수냐, 황제냐 둘 사이에 선택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의 밑에서 일했던 한 시청직원은 모토시마의 발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인 모두 진실을 알아요. 하지만 조용히 있어요." '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해석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고백과 용서를 통해 죄를 극복하는 서구 기독교식 문화와 달리 '자연'의 이치를 중시하는 일본전통문화에서 신의 눈에 옳지 않은 일에 용서를 구하는 것은 '체면'에 치욕을 입히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안 부루마Ian Buruma, <Wages of Guilt: Memories of War in Germany and Japan> 참조

 

 

3. 서양과 동양인가

 

나는 용서를 못하는 성격이다. 나에게 잘못하거나 실수한 누군가와 싸우고 화해하고 잘지내는 일은 없다. 한가지 방법은 그의 죄를 아예 묻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 방법은 그와 아예 영엉 보지 않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바꾸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마도 외향적인 사람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이 쉬운 천성인것 같은데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성격이다. 내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은 안다. 이 빌어먹을 성격때문에 친구가 없다. 누가 나한테 잘못하는 것도 싫고 나도 남에게 피해주는 것이 싫어 친구를 안만든다. 스스로 소극적이고, 스스로 입지를 좁힌다. 내성적이다. 다분히 동양적이다.

 

서양인들은 왜 잘못에 대해 떳떳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하냐고 따진다. 동양인들은 내 잘못을 남도 알고 나도 아는데 왜 들추어내어 상처만 곪게 만드냐고 반박한다. 내가 동양인들을 이해하는게 옳다면, 우리는 절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누군가 나에게 한 잘못은 사라지거나 옅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사과하고 도게자로 무릎도 꿇고 삼보일배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보상일 뿐이지, 그가 나에게 한 잘못이 잊혀지는 방법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마디로 한번 간 금은 다시 붙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붙은처럼 보이는 상처는 표면일 뿐이다. 새살은 금방이라도 떨어질것처럼 연하고 상처를 잘 보호하지도 못한다.

 

일본에게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억지이다. 매년하는 사과가 아무리 사무적이고 진정성이 없기로서니 더 발전할 여지도 없어보이는 사과를 얼마나 더 받아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일본을 용서할 마음은 없다. 천지가 개벽해서 일본의 천성이 완전히 바뀐다고 하더라도 일본과는 절대 속살을 부비며 살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새로 쓰지 않는 이상 일본과 속정을 나누며 살수는 없다. 웃으며 살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집 밖에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끊임없이 반성하라고 외치는 이유는 그들중에 진짜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우리는 우리 죄를 안다' 고 하는 와중에 몇몇은 '우리의 죄는 우리로부터 발현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피해자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일본 정부가 이들을 세뇌시키고 있다고 본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가식뒤에 피해자 의식을 조장해서 결국에는 무균한 민족으로 재탄생 시키려는 모종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순간 모든 일본인이 피해자 의식에 동조할 때, 그리고 선민의식이 여기에 불을 붙일때, 가장 직접적이고 당장의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일 것이다. 모든 일본인이 순수하게 전쟁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낄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51%는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것이 우리의 생존방식인 것이다.

 

더불어, 서양은 그렇게 고백하고 용서하는 문화가 발달해서 외도가 많고 결혼도 안하는 추세가 늘어나는 건가. 바람피고 용서받고 뒤통수치고. 결국엔 자신들도 상처받고 하소연하면서 뭘 자꾸 그렇게 고백하라고. 쿨한척 하는 것도 병이다.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역의 문제  (0) 2015.02.15
한식 먹고 싶다  (0) 2015.02.09
무상교육, 선진국병, 볼리아스코재단, 한국과 아프리카  (0) 2015.02.06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0) 2014.12.20
어디까지 가봤나  (0) 201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