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네다 2020. 12. 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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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파람북

 

13

식량이 모자랄 때는 아이와 젊은이가 먹고 늙은이는 굶었다. 배고픔이 남세스러워서 늙은이들은 스스로 나하에 몸을 던졌다. 병들고 배고프면 늙은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마을에서 사라졌따. 늙은이가 젊은이를 낳았으나 늙은이는 누구의 부모도 아니었다. 늙은이들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수군거리다가 그믐달 뜨는 새벽에 나하 강가에 모여 쪽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수군거림을 눈치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나루터에 목선 한 척을 매놓고 말린 양고기와 끓인 말 피를 몇 덩이 실어놓았다. 배에 오를 때 늙은이들은 아무런 짐도 지니지 않았다. 늙은이들의 움직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배가 바다에 닿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지 못했다....'시원기'는 새벽에 늙은이들이 강물을 따라 사라지는 풍속을 돈몰旽沒이라고 적었다. 하류로 흘러간 늙은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돈몰한 늙은이들의 뒷일을 말하지 않았다.

 

22

초나라 군사들은 몸에 착 붙어서 팔다리의 힘으로 제어하기 쉬운 무기를 으뜸으로 여겼다.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적을 베지 못하면 내가 죽을 차례다. 칼이 적 앞에서 헛돌았을 때 나의 전 방위는 적의 공세 앞에 노출된다. 이때 수세를 회복하지 못하면 적의 창이 내 몸에 꽂힌다. 나의 공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고, 적의 수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 적 또한 이와 같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생사는 명멸한다. 휘두름은 돌이킬 수 없고 물러줄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다. 모든 휘두름은 닥쳐오는 휘두름 앞에서 덧없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고 '시원기'에 적혀 있는데, 수네 공이네 죽음이네 삶이네 하는 언설들은 훨씬 게을러진 후세에 기록된 것이다.

 

131

이 세상의 온갖 돌무더기를 치우려면 스스로 강고해야만 할 것이고, 스스로 풀어 헤쳐버리면 세상의 돌무더기를 치울 수 없을 것인데, 아버지 목왕의 돈몰은 어쩌자는 것인지 표는 알 수가 없었다. 초의 대륙이 주인 없는 풀밭으로 돌아가더라도 단의 돌무더기를 모두 치울 수 있다면 모두 주인이 없어진 초원에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지를 표는 생각했는데, 답답했을 뿐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251

월의 말들은 눈빛에 날이 서 있지 않았고 조바심이 없었다. 말들은 높이 울지 않았다. 말들의 시선은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을 보았다. 발목이 굵었고 뒷다리 바깥쪽에 근육이 굳어졌고 등뼈가 솟아 있었다. 달리기보다는 노역에 부려진 말들의 몸매였따. 폐마들을 바라보면서 야백은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던 일의 두려움을 떠올렸다. 말은 옆구리에 박차를 지르는 말 탄 자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삼아서 달렸고, 사람은 말의 몸을 제 몸으로 삼아서 달렸다. 말 탄 자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렸고 어떤 자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렸다. 달려갈수록 세상은 멀어졌고 지평선은 늘 제자리에 있었다. 야백은 달리던 시절의 지평선과 그 위에 뜬 노을을 생각했다. 박차를 받던 옆구리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박차가 박힐 때, 콧구멍으로 노을을 빨아들이는 듯한 환상을 야백은 느꼈었다. 그때, 환상은 발굽을 튕겨주는 땅바닥보다 더 확실했다.

 

 

김훈의 筆의 결은 옥이나 금강과 같고, 글의 분위기는 피와 똥냄새가 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글로 옮길 때 김훈의 의식과 생각이 더 잘 드러난다. 역사소설은 배경지식이 있어서 스리슬쩍 흘러갔는데, 판타지다 보니 웅얼웅얼 말이 고인다. 없는 뼈대에 살을 붙이려고 하니 헛살이 붙는 모양이다. 같은 말이 여러번 반복되고 아까 읽은 듯한 내용이 또 보인다. 다 읽고 나니 굵은 줄기가 보이긴 하는데 풍성한 잔가지들의 효용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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