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Livro do Desassossego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 오진영
문학동네
67 사실 없는 자서전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불안해진다. 친구와의 간단한 저녁식사 약속마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불렁리으킨다. 장례식에 가고, 사무실 동료와 함께 일을 처리하고, 기차역에 누군가를 마중나가는 등의 사회적 의무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한다. 정작 닥치면 별일 아니고 그리 걱정할 만한 일도 아닌데 전날 밤부터 근심스러워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다음에도 또 반복되고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나아지는 법이 없다.
"나의 습관은 고독으로 인해 생긴것이지 사람들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134
우리는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속이는지! 우리가 깨어 있는 밤, 감정이 넘쳐 우리 자신을 되찾는 바닷가에서 어떤 바다가 우리 안에서 큰 소리를 내는지! 잃어버린 것들, 찾았어야 했던 것들, 실수로 인해 얻었고 만족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고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후에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했을 뿐 사실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들, 우리가 느꼈던 것인데 생각했다고 믿었던 것들, 우리가 감정이라고 착각했던 모든 기억들, 그리고 밤 바닷가를 거닐고 있으면 밤의 거대한 밑바닥에서부터 다가와 해안에 잔물결로 부서지는 저 시끄럽고 차가운 바다...
170
한번도 이해받기를 원한 적이 없다. 이해받는 것은 몸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모습을 잘못 알고 있기를, 나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며 예의바르고 혼연스럽게 대하기를 원한다.
사무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여긴다면 그보다 더 성가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모순을 즐기고 싶다. 그들이 나를 자기들과 같은 부류라고 오해하는 고행을 겪기를 원한다. 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는 십자가의 시련을 겪기를 원한다.
183
불행히도 지성의 병은 감정의 병보다 덜 아프고, 불행히도 감정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덜 아프다. '불행히도'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이 그 반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혀 느끼는 지적인 고뇌는 사랑, 질투, 그리움 등의 감정만큼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강렬한 육체적 공포처럼 우리를 압도하지도 않고, 분노나 야심처럼 우리를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그런가 하면 영혼을 파괴하는 어떤 아픔도 치통이나 복통, 출산의 진통(상상하건대)만큼 생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186
나는 이루어질리 만무하고 특별한 일을 꿈꾸는 사람들보다 접근 가능하고 합리적이고 이루어질 법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더 딱하다.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좀 미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꿈꾸는 것을 믿으며 행복해한다. 아니면 그들은 단순한 몽상가라 영혼의 음악같은 공상이 별 의미 없이 그들을 달래준다. 하지만 가능한 것을 꿈꾸는 이들은 진짜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다. 로마 황제가 될 수 없는 건 크게 실망할 일이 아니지만, 매일 아침 아홉시경 거리에서 마주치는 재봉사 아가씨에게 한 번도 말을 걸지 못하는 일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꿈은 처음부터 우리의 접근을 막지만, 가능한 꿈은 우리 삶에 개입하고 그 꿈을 이루려는 방향으로 삶을 진행시킨다. 불가능한 꿈은 단독적이고 독립적인 반면, 가능한 꿈은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적인 일들에 의존하게 된다.
194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과 제대로 구분짓는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운 데 비해 우월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을 구분짓는 것은 오히려 쉽다는 것이다.
종교를 비판하는 글과 과학 서적에 매혹되기 쉬운 지성의 유아기 시절에 읽었던 생물학자 헤겔의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충 이런 내용인데, 평범한 인간과 우월한 인간(말하자면 괴테나 칸트 같은) 사이의 거리는 평범한 인간과 원숭이 사이보다 훨씬 멀다는 것이다. 진시을 담고 있는 말이기에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따. 사고하는 인간 중 하위에 있는 편인 나와 로레스 출신 농부 사이의 거리는, 이 농부와 고양이나 개(원숭이라는 말은 안 쓰겠다) 사이의 거리보다 틀림없이 더 멀 것이다. 고양이에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든 주어진 삶 혹은 부과된 운명을 진실로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뭔가에서 파생된 존재이고, 타인의 행동이 드리운 그림자이고, 그 영향이 구현된 존재이며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추상적인 사고와 객관적인 감정이 있기에 나와 농부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편 농부와 고양이의 영혼 사이에는 저옫의 차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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