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Cosmos : Possible Worlds
앤 드루얀Ann Druyan / 김명남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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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프가 과학자로 훈련받던 시절, 어떤 교수들은 18세기의 영웅적 군인이자 선구적 생물학자였던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의 이론을 여전히 믿었다. 역사는 때로 누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잔인하다. 가엾은 라마르크는 생물학에 중요한 기여를 잔뜩 남겼고, 10대 시절에 이미 놀라운 영웅 행위를 선보였음에도, 결국 틀린 생각을 주장했던 일로 가장 널리 기억된다.
1760년에 아버지가 죽자, 라마르크는 말을 사서 프랑스를 가로지른 뒤 오늘날의 독일 지역에서 벌어지던 프로이센 군대와의 전투에 참전했다. 자원입대한 그는 전장에서 놀라운 용기로 이름을 날렸지만, 전우와 장난하다가 그만 군인 경력을 접을 수밖에 없는 부상을 입었다. 그 후 그는 모나코에서 요양하던 중 우연히 식물학 책을 집어 들었고, 진정한 열정의 대상을 발견했다.
...오늘날 그의 통찰 중 일부가 재평가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 그의 이름을 기억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그의 생각, 즉 동식물 개체가 생애 중에 획득한 형질이 후손에게 전수된다는 생각을 떠올려서일 것이다. 이것은 만약 기린이 나무 꼭대기에 닿으려고 목을 자꾸 빼다가 목이 길어지면 그 후손도 길어진 목을 '물려받는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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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8월,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Prauda)>에 아제르바이잔의 어느 스물아홉 살 농부를 치켜세우는 소개 기사가 실렸다. 그 농부가 기르는 완두콩은 러시아의 혹한을 견뎌냈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현장의 사람이었다. 우크라이나 폴타바 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13세가 되어서야 읽고 쓰기를 배웠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는 '맨발의 과학자'였다. 대학에서 현미경으로 '초파리의 털북숭이 다리를 관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주치는 모든 생물을 파괴하는 병충해가 으레 그렇듯이, 리센코도 처음에는 하찮고 해 없는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바빌로프와 기아를 끝내려는 그의 탐구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는 첫 사격이었다. 리센코는 획득 형질이 후대로 전달된다는 라마르크의 기각된 이론을 되살렷다. 유전학은 농작물을 여러 세대에 걸쳐 육종하면 혹한을 비롯해서 자연이 가하는 여러 위협을 이겨 낼 품종을 얻을 수 잇다고 약속한 데 비해, 라마르크주의는 훨씬 더 즉각적인 보상을 약속했다. 완두콩이나 밀 씨앗을 얼음물에 담가두면 그 후손이 추위에 더 잘 견디는 형질을 가지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종자 춘화라고 불린 그 방법이 유효하다면, 만성적 식량 수급 불안정을 겪는 (구)소련에는 만병통치약일 터였다. 겨울에도 신선한 초록 콩을 먹을 수 있다는 전망은 또 한 번 역사상 최악의 기근 중 하나를 목전에 둔 나라에는 저항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종자 춘화라는 사기적 농법을 채택한 일은 (구)소련이 스스로에 가한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식량 자급 능력은 오히려 더 훼손되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바빌로프의 보물을 지키는 그들도 굶주림에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침침하게 밝혀둔 냉랭한 연구소에서 책상에 앉은 채 죽었다. 곁에는 땅콩, 귀리, 완두콩, 표본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명예가 그것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가 굶주림에 스러져 갔다. 그런데도 컬렉션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빌로프는 살아 있었다. 간신히. 그는 사라토프의 감옥으로 옮겨져 있었다. 가까스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살아냈지만, 괴혈병에 걸려서 뼈만 남았다. 그는 좁은 감방에서 최후의 기력을 짜내어 자신을 핍박하는 이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쉰네 살이고, 식물 육종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지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조국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기쁠 것입니다. ... 아무리 하찮은 업무라도 좋으니 제 전문 분야에서 일하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국가는 그를 총살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기근과 굶주림을 없애는 데 누구보다 많이 기여한 남자에게 총살보다 더 잔인한 결말을 주기로 했다. 그 뜻에 따라, 바빌로프는 서서히 굶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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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정부는 바빌로프 컬렉션의 현대적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은행(Svalvard Global Seed Vault)을 열었다. 종자 은행은 노르웨이와 북극점 사이에 있는 어느 섬의 얼어붙은 폐광을 개조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그곳에는 종자가 100만 알 가까이 보관되어 있다. 최근 노르웨이 정부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지하 창고를 업그레이드하고 단열을 개선했다. 기후 변화 때문에 북극 영구 동토층이 빠르게 노강서 창고가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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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슈는 표시된 벌이 벌집 입구에서 햇빛을 받으며 겉보기엔느 무의미한 춤을 씰룩씰룩 추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그 변덕스러워 보이는 춤동작을 태양의 위치와 함께 공책에 꼼꼼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벌이 왼쪽으로 돌았다가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하면서 춤추는 동작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그러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결론이 떠올랐다. 벌의 안무에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다. 벌은 프리슈가 춤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프리슈는 이것을 독일어로 "tanzsprache"라고 불럿다. 그리고 그 언어는 수학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프리슈는 벌의 1초(second, s) 동안 씰룩거림(waggle, w)은 1킬로미터의 거리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1sw=1킬로미터였다. 이 정보에 태양의 위치가 씰룩거리는 방향을 결합하면, 나무로 가득한 숲에서 딱 한 나무를 가리킬 수 있는 확실한 암호가 되었다. 만약 이 공식이 우주 저편에서 날아와서 FAST 망원경에 잡힌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것을 외계 지적 생명체가 보낸 메시지라고 해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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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에드윈 에벗의 1844년 걸작 <플랫랜드:다차원 세계의 모험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은 우리가 양자 세계라는 까다로운 세계를 생각해 볼 때 입문서로 쓸 만한 최고의 책이다. ... <플랫랜드>는 2차원 세계에서 사는 거주자들의 이야기다. 그런 세계를 떠올려보면, 우리도 추가 차원이 있는 세계로 도약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자, 우리는 납작한 도형 모양의 지붕들이 있고 납작하고 길쭉한 차들이 도로를 달리는 도시 위를 날고 있다. 언뜻 더없이 평범한 세상 같지만, 이 세계에는 공간 차원이 하나 부족하다. 세 번째 차원이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시민이, 모든 사물이, 그리고 그들이 알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납작하다. 집도 납작한 사각형이다. 삼각형 집도 있다. 그것보다 더 복잡한 도형, 이를테면 팔각형 집도 있다. 어쨌든 모두 완벽하게 납작하다.
...당신이 그 플랫랜드의 방문했다고 하자. 당신은 소리쳐서 사람들을 부른다. 당신의 목소리는 꼭 딴 세상에서 흘러나온 소리처럼 울린다.
대답이 없다. 그 대신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린다. 한 플랫랜드 주민, 플랫랜더Flatlander가 이 정체 모를 목소리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집에서 뛰쳐나왔다. 작고 납작하고 길쭉한 그는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허둥댄다. 그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싶어서 두렵다. 그에게는 당신의 목소리가 자기 안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는 위에서 오는 소리란 것은 없다. 그 세계에는 '위'라는 것이 없으니까.
당신 같은 3차원 물체는 플랫랜드의 평평한 표면에 접촉하고 있는 발바닥 부분으로만 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 플랫랜더는 움직이다 말고 우뚝 서서 어리둥절해한다. 당신이 발바닥이 그 세계와 접촉한 영역이 플랫랜더에게는 허깨비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무릎을 꿇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고 길쭉한 플랫랜더를 집어올린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기묘하게 느낄지 알아요. 걱정할 건 없습니다. 당신은 잠시 3차원으로 안전한 여행을 떠나온 것뿐입니다. 해롭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는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플랫랜더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한다. "그러니까 이게 위라는 거군요." 그는 난생처음 납작한 집들과 이웃 플랫랜더들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린다. 자신이 사는 2차원 세계를 3차원 세계에서 바라보는 일은 인생을 바꿔 놓는 경험이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를 더 괴롭힐 필요는 없다. 당신은 그를 2차원 세계로 부드럽게 내려놓는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그를 맞는다. 그녀에게는 그가 불가사의하게 사라졌다가 난데없이 도로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3차원이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산다. 이것보다 차원이 더 적은 세계를 상상하기는 쉽지만, 더 많은 세계를 상상하기는 몹시 어렵다. 0차원 세계는 점이다. 차원이랄 것도 없는 그냥 점 하나다. 1차원 세계는 모든 것이 선 뿐인 세계다. 2차원 세계는 플랫랜드다. 3차원은 우리가 사는 세계다.
우리는 2차원 존재가 3차원 세계를 미처 상상하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지는 모습에 웃는다. 하지만 양자 현실로 오면, 우리가 바로 그 꼴이 된다. 차원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플랫랜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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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확률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확률이란, 우리의 무지가 낳은 허깨비일 뿐일까? 만약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이런 생각은 '초결정론superdeterminism이라고 불린다. 초결정론적 우주에서는 크든 작든 모든 사건이 -- 평화 조약의 파국적 결렬도, 한 번의 재채기도, 한 꿀벌이 한 꽃을 꽃가루받이해 주는 일도,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는 일도 -- 우주가 시작된 순간에, 즉 우주가 탄생한 순간에 이미 장차 벌어질 일로 정해져 있었다니, 우리 인간도 우주의 다른 모든 존재처럼 기본 입자로 만들어졌기에, 우리도 양자 세계를 지배하는 그런 법칙에 똑같이 종속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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