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위스키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하루키의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요오코 / 이윤정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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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승을 했던 1978년, 나는 진구 구장까지 걸어서 십 분 거리인 센다가야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경기를 보러 갔다. 그해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이때는 이미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팀명이 바뀌었다) 구단 창설 이십구 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 여세를 몰아 일본시리즈마저 제패해버렸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한 해였다. 그리고 그해, 나 역시 스물아홉살에 처음으로 소설이라고 할 만한 것을 완성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으로, 이것이 <군조> 신인문학상을 타면서 그때부터 일단은 소설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그저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작지 않은 인연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에 이르기까지,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십 년 동안, 나는 실로 방대한, (기분상으로는) 거의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봐왔다. 다시 말해 '오늘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을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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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 사람의 이름을 완전히 잃어버릴 일은 없습니다. 제가 훔치는 것은 이름의 일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덜어낸 만큼 이름의 두께가 조금 얇아지거나 무게가 가벼워지기는 합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면 땅에 생긴 내 그림자가 그만큼 엷어지는 것처럼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결손이 생겨도 본인이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뭐가 조금 이상한데 하는 정도지요."
"하지만 그중에 확실히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 자기 이름의 일부를 도둑맞았다는 걸."
"네, 그런 분도 물론 있지요. 가끔 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곤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 성가신 일이죠. 그리고 자기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 결과 어떤 경우에는 정체성의 위기 비슷한 것마저 겪습니다. 그런 일들은 오롯이 제 탓입니다. 제가 그 사람의 이름을 훔쳐서예요. 심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무겁게 짓누릅니다. 하지만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도저히 훔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변명하는 건 아니지만, 제 도파민이 그러라고 명하거든요. 자, 어서 이름을 훔쳐버려. 법에 걸리는 일도 아니잖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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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머리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썼는데, 여자 얼굴의 미추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싶다. 내 생각에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데), 아름다운 여자는 대부분 '아름답다'는 공통항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 그녀들은 저마다 황금빛 털을 지닌 아름다운 원숭이를 한 마리씩 등에 업고 있다. 원숭이들의 털의 광태이며 빛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이 발하는 눈부신 빛에 결국은 다 비슷해 보인다.
그에 비해 못생긴 여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독자적으로 거친 털의 원숭이를 업고 있다. 원숭이들의 털이 어떻게 거칠고, 듬성듬성하고, 지저분한지는 저마다 세세하게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원숭이들은 거의 빛나지 않기에 황금색 눈부심이 우리 눈을 어지럽힐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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