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나는 전설이다>

네다 2008. 1. 2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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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2008)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

출연  윌 스미스

 

1. 무서운 것은 적들이 아니다. 외로움이다.

그래서 샘이 죽었을 때 네빌이 적들을 불러내면서까지 자살을 시도했을 것이다. 사실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인류를 위한 백신을 만들어서 다시 인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샘에 대한 단순한 책임감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마네킨에 이름을 붙이고 슬픔이 절절히 배어 나오게 말을 걸고 했는지 모른다. 자기의 분신이라 할 만한 샘을 직접 죽일 때에 느껴지는 그 슬픔은 혼신의 연기 덕분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집착 덕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변종 인류로 묘사하고 있지만 작가가 의미하는 것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인류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인식하고 사실은 자신의 마음 휴식할 곳 하나 없는 삭막한 사회. 기댈 수 있는 곳도 없고 잠시만 주의를 늦춰도 금세 포획되고 살육당하는 사회. 의도하지 않은 청자를 대상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공포를 없애기 위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결국 메아리만 돌아오는 사회. 가끔은 적들이 그 청자를 미끼 삼아 나를 포획하려고 노력하는 소름끼치는 사회. 그것이 성공바이러스에 물든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암에 대한 완벽한 백신이 불러운 재앙. 음미해 볼만 하다. 불치병은 인류를 위협하는 자연의 공격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류를 강하게 키우기 위한 자연의 배려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질병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인류는 오히려 사망하기 마련인 것이다.

 

내가 네빌이었다면 과연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끔찍할까. 죽은 자의 고통을 살아남은 자가 이해할 수 없듯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역시 죽은 자로서는 알 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살을 옹호하는 바는 아니지만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생존해서 살이 썩어가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즉사한 사망자를 부러워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눌 수 없는 슬픔은 일시적인 고통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이래저래 사람은 대세를 따라야 속편하다.

 

원작에서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 처리한 엔딩이었을지 몰라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여운이 남기보다는 허무맹랑하고 네빌만 억울해진 엔딩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엔딩에 중점을 두지 말고 개인으로서 외로움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일대기를 읽는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충분히 의미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내용이다. 제목 그대로 '전설'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굳이 윌 스미스가 운동하는 장면을 길게 잡지 않았어도 그의 멋진 몸매는 다 아는 것인데, 괜히 영화만 이상하게 만들었다. 물론 눈요기는 좋았짐나. 여하튼 매력적이야.

특수효과 하나는 역시 헐리웃이다. 참, 진짜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할까 걱정된다.

 

3. 미래에서 온 전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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