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감독 팀 버튼
출연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알란 릭맨
1. 복수는 하는 사람이 즐겨야 구경하는 사람도 즐거운 법인데, 이렇게 무표정하게 혹은 무감각하게 하는 복수는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는 법이다. 토드가 즐거운 마음으로 복수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관객을 조금이라도 배려해주는 작가의 마음이 있었다면 후반부 내내의 지루함 정도는 없애줄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가 초점을 둔 곳은 굴절된 사랑과 토드의 복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관객이 토드의 심경 --그가 과거에 어떤 즐거운 삶을 살았는지 어떤 행복을 맛보았는지 억울하게 들어간 감옥에서 어떠한 비참한 심정의 질곡을 겪었는지-- 동참하기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의 일대기는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건 말그대로 추억의 환상이었을 뿐이다. 또 영화 전반을 꿰뚫는 맹목적인 사랑 --아내와 딸에 대한 토드의 사랑과 그런 토드를 향한 러빗의 천진난만한 사랑-- 은 맹목적이고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에 큰 양해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하게 작가의 의도를 부각시켜 준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토드의 추억때문에 그의 복수는 더욱더 비이성적이고 광기로 가득차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초점 풀린 눈과 젊은 혈기로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자 하는 토드는 노련하고 차가운 피가 흐르는 러빗에 의해 철저하게 훈련된 살인마로 성장한다. 특히 러빗이 간직해둔 면도칼을 들어 "친구여"하고 노래를 부를 때의 그 묘한 웃음은 예의 잔인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homme fatale 조니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비례하여 토드가 애초에 복수하고 싶었던 대상은 극악한 지배층과 부조리한 세상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대상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토드는 이내 창밖에 보이는 아무나 --심지어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처지에 있을 과일장수까지 오해한다-- 에 대해 무차별적인 복수를 노래하게 된다.
광기의 복수전이 시작되면서부터 토드의 제물은 완전히 생명의 느낌을 상실한 말그대로 살아있는 고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눈에는 초점이 없고 죽음조차 멍청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은 사람 혹은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꼭두각시인형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사람고기를 먹는 사람들 역시 사람이기보다는 육식동물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점 역시 비이성적인 토드의 모습과 미쳐가는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토드의 정신은 갈수록 상처받고 황폐화된다.
복수를 즐긴 오직 하나의 인물은 바로 러빗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설계자이자 동시에 밥인데 한편으로는 매우 낭만적이고 소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닿을 수 없는 꿈을 꾸면서 불구덩이를 향해 달린 꼴이 되어버렸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불합리한 세상의 대우때문에 런던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맛없어진 자신의 파이'를 노래하던 그녀는 치기어린 복수심으로 추억을 찾아온 토드를 앞세워 세상에 대한 그녀만의 복수,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을 먹는 세상의 전복'을 꿈꾼다. 그녀는 순수해서 더 잔인하고 낭만적이기 때문에 더욱더 무섭다. 다만 인형같은 모습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그녀의 귀여운 상상은 팀 버튼식 유머의 정석이다.
너무 진해서 눈이 시린 캐릭터를 가진 토드와 러빗이나 연약하고 어린 안소니와 조안나나 불행의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나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은 아름다운 동화를 꿈꾸는 듯한 설정이지만 이 역시 비관주의에 빠진 여주인공과 비빌 데 하나 없는 타향에서 생존해야 하는 순진한 남주인공으로 인해 어두운 끝을 상상하게 한다. 더구나 피맛을 본 토비까지 어린 주인공들 역시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부조리한 사회에서 암울한 운명에 묶인 사람들의 처절한 파멸을 그리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토드가 처와 딸을 데리고 온 남자를 살려준 건 무연고자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모습이 이입되서일까.
토드는 조안나를 본 순간 딸임을 알아차렸을까, 정말로 죽이려고 했을까.
2. 색채감이 최고이다. 흑백에 가까운 영화 전체의 채도는 붉은 톤으로 채색된 행복했던 과거의 회상과 대비되면서 19세기 런던이라는 시궁창의 모습을 맛깔나게 그려낸다. 거기에 더불어 흰색으로 변장된 인물들은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은 잃어버린 채 복수에
눈먼 채 기계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흑백의 바탕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은 당연히 검붉은 색일 것이다. 화면까지 튀기는 분수형의 피는 관객들을 참혹한 살인의 현장으로 인도하며 소름끼치게 하기 충분하다.
3. 장동건은 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영화에 몰입이 안된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조니 뎁 영화 중 가장 쉽게 몰입이 되었던 것은 초기작인 <가위손>이며 시간이 갈수록 나의 영화에 대한 몰입을 저하시킨다ㅠㅠ 여기에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잘 생겨서 못생긴 헬레나 본햄 카터가 짜증날 정도였다.
<해리포터>의 스네이프교수 알란 릭맨, 참 잘생겼는데 비열한 역에 은근히 잘 어울린다. 특히 권력을 이용해서 약자를 압박하는 역할은 제격이다.
4. 에잇, 촥, 에잇, 촥. 푸부부부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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