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일본인과 영어

네다 2008. 6. 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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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나카지마 테츠오 마이니치 신문 서울지국장
100년간의 시행착오… 日 영어교육 해답은?
일본인과 영어
 

사이토 요시후미 지음ㅣ硏究社ㅣ248쪽|2000엔

 

한국 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영어 열풍이 뜨겁다. 교육제도도 바뀌어, 공립 초등학교에서의 영어수업이 2011년부터 '5·6학년생은 주 1시간 필수'가 됐다. 지난 5월에는 내각 직속의 교육자문기관이 '3학년부터 필수화'를 갑작스레 제안했다. 한국의 영어교육 강화방침에 자극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최근의 움직임을 포함해, 일본인은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배워야 할지를 놓고 19세기 중반 개국 이래 100년 이상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사이토 요시후미(齋藤兆史) 도쿄대 준(準)교수(영어교육·학습론 전공)가 지난해 펴낸 《일본인과 영어》는 그 역사를 속속들이 파고든다. 한국과 일본의 언어구조가 비슷하고, 영어학습의 어려움도 닮아있는 만큼, '한국인과 영어'를 생각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흥미 깊은 내용들을 소개한다.

 

"일본의 영어교육 사상, 중·고교 수준에서의 대중 영어교육이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올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말일까?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초기, 역사에 남을 만한 영어의 달인이 배출됐다. 예를 들어 니도베 이나조(新渡戶稻造)는 1899년 영어로 쓴 '무사도(武士道: The Soul of Japan)'를 미국에서 출판해 당시의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로부터 절찬 받았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이토 교수는 지적한다. 니도베는 소년시절, 전 교과를 외국인 교관으로부터 영어로 배우고, 시험 답안도 영어로 쓸 정도로 철저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엄선된 수재들이 국가의 명운을 짊어지고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했던 시대였다. 아무래도 통상의 학교교육으로 재현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교육방법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어와 영어의 언어간의 거리를 감안했을 때, 현재의 중등교육의 수업 정도로는 어떤 교수법을 창안해내든, 어떤 교육개혁을 단행하든 학생에게 실용적인 영어실력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은 원래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다."

 

확실히 '언어간의 거리'의 의미는 크다. 나는 외국어 습득에는 비교적 늦은 35세에 서울에 유학했지만, 일본어와 거리가 가까운 한국어를 비교적 순조롭게 배울 수 있었다. 같은 반에 있던 미국인들의 고생은 보기가 가엾을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1920년대에 이미 중학교에서의 영어필수 폐지론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그 배경에는 미국에서의 일본인 이민배척 운동 외에도, 1주일에 10시간을 가르쳐도 학생의 영어실력이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주일에 3, 4시간 밖에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니, 영어와의 '거리'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틀림 없다. 그러면, 초등학교부터 가르치면 어떨까?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메이지 시대 이래 여러 가지 형태로 이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아동의 영어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던 예는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눈에 띄는 향상'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약간의 향상' 정도라면, 다른 교과의 수업을 줄여서 영어를 가르치는 의미가 궁색하다. 최근의 논쟁 중, 일본 굴지의 영어전문가들이 초등학교에서의 영어 도입을 반대해왔다. 이유는 "영어학습의 어려움, 언어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지적하고, 스스로도 국어교육 우선론을 펼친다.

 

"일본어교육을 희생해서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2개 언어 병용이 기적적으로 잘 돼서 일본인이 영어 80, 일본어 90 정도의 영어 능통자가 됐다고 해도,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게는 영어의 활용에서 뒤지고, 모국어에 의한 사고(思考)에도 지게 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의 영어를 쓴 대화의 불평등이 간신히 완화되는 것은, 이쪽이 상대가 모르는 언어를 100의 힘으로 갖고 있는 경우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되고 있다. 일본어능력을 망가뜨리지 않고 국민 전반의 영어능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영어권의 엘리트와 영어로 대등하게 논의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사이토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우선 중고교에서 수업시간을 늘려서 '저급한 실용회화능력이 아닌, 개개인이 각자의 목적의식에 맞춰서 앞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영어실력을 쌓아올리기 위한 발음, 문법, 독해, 작문의 기초력'을 부여한다. "그 후는 각자 노력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는 영어교육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보통의 일본인이 고교까지 수업에서 '쓸 수 있는 영어'를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별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결론이 된다. 100년 이상의 시행착오의 결말이 이래서야 슬픈 느낌이 들지만, "그러한 기초력 그대로는 실제로 쓸 수 없다고 하는 당연한 사실을 문제시했던 데서, 과거 수십 년에 걸친 일본의 영어교육의 착오가 있었다". 또 우수한 국제인을 육성하는 환경 정비에 대해서는 "그러기 위한 예산과 노력 등 초등학교 영어필수화를 위한 예산이나 노력과 비교해보면 별 것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야기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 토플 점수는 40여 년 전에 역전돼서 한국 쪽이 높고, 미국의 명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의 숫자도 한국 쪽이 훨씬 많다. 영어와의 '거리'는 같더라도, 노력하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또, 초등학교에서의 영어필수화를 반대하는 전제로 사이토 교수는 "충분한 영어교사의 확보가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미한국인 200만 명을 인재 풀로써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영어교육 강화책은 일본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대담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우리들도 뒤따르자"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아이들에게는 큰일이다. 초등학생때부터 공부만 시킨다면, 등교거부가 속출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