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Books | 박영석 기자 yspark@chosun.com
친절과 인종 차별이 한 지붕 아래…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마이클 예이츠 지음|추선영 옮김|이후|428쪽|1만6000원
"여행지의 경제·정치·환경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선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없다." 저자 예이츠(Yates)가 서문에서 말했듯, 책은 여행감상에 경제논평을 버무린 '진지한' 여행서다.
텍사스 남부 빅 벤드 국립공원에 간 저자는“주변의 대기 오염이 아름다운 풍광 에 대한 기대를 버려 놓았다”고 말한다.
예이츠는 55세 때인 2001년, 32년간 몸담은 피츠버그 대학 경제학 교수 직을 그만뒀다. 권태로운 노동, 이윤만 지향하는 대학, 쉬운 전공만 찾는 학생 등 상아탑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다시 동부로 옮겨 다니며 5년간의 미국 관찰기를 내놓았다.
예이츠는 피츠버그를 떠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시급(時給) 6.25달러인 호텔 안내 데스크 일을 시작한다. "노동을 분석하는 것과 직접 노동하는 것은 달랐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허드렛일을 도맡은 현장을 보면서 울분을 느꼈다고 했다. 고용주는 숙련 노동 대신 단순 반복 노동을 유지해 저임금 체제를 이어가고, 육체 노동자는 내일을 위한 아무런 준비 없이 호텔이 운영하는 술집에 주급을 반환한다.
저자는 중서부 와이오밍 주 잭슨에서도 양극화 현실을 목격한다. 딕 체니 부통령, 제임스 울펜슨 전 세계은행 총재, 배우 해리슨 포드 등 명사들이 이곳 고급 주택가를 점령한 채 주로 멕시코계인 저임 노동자들이 이들을 시중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특권층은 "남녀 한 쌍이, 1년에 2주 동안만, 이 마을에 있는 8000평방피트(약 743㎡) 집에 머문다"는 의미로 '2·2·8'로 불린다.
저자는 '빅 애플' 뉴욕의 낭만적 포장을 벗긴다. 부유층의 뒤에는 막대한 인간 노동이 있고, 맨해튼의 노동은 임금·인종·민족·성별에 따라 뚜렷이 분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맨해튼을 기준으로, 유색인·이민자가 주로 일하는 레저·서비스 산업의 주당 평균 임금은 678달러, 백인 남성이 주로 일하는 금융계 주당 평균 임금은 6199달러였다"는 수치를 인용한다.
여행 길에 선 저자의 또 다른 관심사는 환경 파괴다. 그는 워싱턴 주 북서부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멀리로는 백인 조상이 인디언 문화를 초토화했던 일을 떠올리고, 중간중간 자리잡은 사유지의 숲 벌목 현장과 오염 실태를 폭로한다.
포틀랜드는 '산책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 '가장 개방적인 도시'로 통하지만, 실상 '피상적 진보 성향'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몇 블록 차이로 빈부 격차가 확연히 갈리고, 흑인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희생돼도 별 문제가 안 되는 '백인 문화 최후의 성채'라는 데 동의한다.
싱그러운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기대했던 캘리포니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느낀 배신감도 토로한다. 특히 텍사스 남부 빅 벤드 국립공원에서는 "회색 구름(오염된 대기)에 가린 이곳 산만큼 마음 아프게 하는 게 없다"면서 산책조차 하지 않고 떠나 버린다.
저자는 2006년 일시 정착한 콜로라도 에스테크 파크 인근 오두막에서 이 책을 썼다. 그는 이 마을 사람들이 매우 친절한 것 같지만, 인종차별이 만연한 극우 기독교의 중심지라고 말한다. 원제(Cheap Motel and a Hot Plate)는 저자가 주로 싸구려 모텔에 묵고, 휴대용 전열요리기로 조리해 먹으면서 여행을 다녔다는 뜻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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