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폭력의 시대

네다 2008. 8. 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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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박영석 기자 yspark@chosun.com
혼란의 21세기… 정부·국민이 소통해야 대통한다
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이원기 옮김|민음사|192쪽|1만5000원

 

홉스봄(Hobsbawm·91)은 "제국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단언한다. "제국주의 세계로 돌아갈 가능성도,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역사론》 《제국의 시대》 《미래의 시대》 같은 명저를 낸 이 유태계 영국 석학은 20세기 후반 미국의 세계 제패 요인을 "경제력을 기반으로 세계 중심으로서의 역할,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한 남미 등 다른 국가 지배층과 군부의 미국 패권 수용, 할리우드의 문화적 영향력, '반(反)독재·자유 이념의 본보기'라는 관념"에서 찾는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이 과대망상적 정책을 펴면서 정치·이념적 지배력의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미국은 군사력을 빼고는 냉전 승리에 따른 이점을 활용하지 못했고, 사상 최초로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저자는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력 행사는 '인도주의적 제국주의'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내부 위기가 9·11 직후 유일 초강대국을 향한 욕망을 촉발했다. 남북전쟁 이래 가장 심각한 정치·문화 균열, 동·서 해안과 중부 내륙 간의 경제 격차, 대도시와 농촌 간 문화 격차, 미국 급진 우익정부의 '편가르기' 같은 모순이 복합 작용했다."
저자는 과거 대영제국이 남긴 교훈을 배우라고 미국에 대해 주문한다. "영국은 역사상 어느 제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통치했으면서도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며 시대 변화를 간파해 무역에 주력했다. 미국은 '덜 위험한 초강대국'으로 남고, 국제사회는 미국이 과대망상에서 벗어나 합리적 외교정책으로 회귀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요청한다.

책은 2000~2006년 저자의 강연 원고 모음이다. 그는 "국가의 위상 약화는 전 세계적 추세다. 국가는 폭력의 독점권마저 잃었다"고 말한다. 영국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스페인의 바스크 독립운동 세력, 프랑스 내 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은 국가가 국내 무장단체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예다. 자유시장에 대한 무한 신뢰, 즉 '시장 주권주의'가 자유 민주주의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가 됐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저자는 '정부·국민 간 소통'이 국가의 약화와 세계화의 실패를 시정할 전략이라고 말한다. "세계화는 정부와 국민 간 교감 없이 자유방임적으로 진행돼 왔기 때문에 실패했다. 국가 내부와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했고, 소외된 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었다"는 것이다.

원제 Globalisation, Democracy and Terror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