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차이나 로드

네다 2008. 8. 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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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상하이서 신장(新疆)까지… 당신이 모르는 중국을 만나다
차이나 로드
랍 기포드 지음|신금옥 옮김|에버리치홀딩스
447쪽|1만6000원

 

312번 국도(國道)의 길이는 무려 4825㎞다. 동쪽 상하이(上海)에서 출발한 이 국도는 강남 농촌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옛 고도 시안(西安)을 지나 고비사막과 실크로드를 지난다. 둔황(敦煌)과 우루무치(烏魯木齊)를 지난 이 1만2000리 길은 마침내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댄 코르가츠에서 끝난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국영라디오 NPR의 베이징(北京) 특파원이었던 저자는 근무 기간이 끝난 뒤 이 기나긴 길을 여행하며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중국인들의 삶을 추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든든한 준비물이 필요했다. 인간 관계가 넓고 경찰에게 발각되기 전에 목적지로 데려갔다가 빼올 수 있는 훌륭한 현지 가이드나 운전기사, 당국이 모르는 안전한 휴대전화 SIM(가입자 인증모듈) 카드, 그리고 미니 디스크를 숨겨둬도 흘러내릴 염려가 없는 삼각팬티였다.

33세의 후자(胡佳)는 중국의 에이즈 인권운동가다. 공산당으로부터 온갖 도청과 감시를 받고 있는 그가 베이징에서 내려와 저자와 만난 에이즈의 현장은 뜻밖에도 허난(河南)성 상차이(上蔡)의 시골 마을이다. 1990년대 중국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내려가는 보조금이 끊겼다. 지방정부들은 자금 확보책의 하나로 일반 농민들에게서 피를 사들여 국내외 의약회사에 백신 제조용으로 팔려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을마다 매혈소(賣血所)가 세워지고 대형 이동 진료소가 마을을 돌아다녔다. '한 달 내내 일해 벌 수 있는 돈보다 피 한 번 팔 때 받는 돈이 더 많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 와중에서 HIV(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까지 함께 퍼졌던 것이다. 한 환자는 말했다. "우리가 피를 판 건 다 가난 때문이에요. 지방세가 너무 높아서예요. 그건 중국 전통이죠. 관료들은 살찌고, 백성들은 말라가고…." 
상하이 노동자들이 황포(黃浦)강 근처를 지나고 있다. 저자는 상하이에서 신장까지 이어지는 312번 국도를 따라 트럭 기사와 매춘부, 여피, 농부, 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로이터

아들과 며느리를 모두 도시로 떠나 보낸 뒤 손자들을 돌보며 농사를 짓고 있는 우강(武岡)의 66세 농민은 "도시 건설 때문에 농지를 모두 빼앗기고 세금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이곳(농촌)에는 손주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양(信陽)의 가라오케에서 만난 20세의 매춘부는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복수심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화산(華山)의 동굴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도사(道士)는 파란 반바지와 빨간 면 탱크 탑을 입고 '수행'을 하고 있던 중 "중국인들은 현대의 생활방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자신들의 뿌리를 잃어버렸다"고 한탄한다.

책에 등장하는 중국의 얼굴들은 이뿐이 아니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중국식 시스템에 편입된 채 티베트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면서도 티베트 독립과 달라이 라마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티베트인 교사, 정부 시책에 의해 강제 낙태 수술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두 아이의 엄마인 여의사, 산업용 필터를 배달하면서 "지금 중국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라고 루쉰(魯迅)풍으로 질타하는 트럭 기사, 중국을 식민 세력이라 단정하면서 한족(漢族)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위구르인이 등장한다. 며칠 동안의 관광여행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중국의 적나라한 속살이 애증(愛憎)과 함께 드러나는 것이다.